오솔길

== 슬픈 사람 13==

빛속으로 2005. 7. 26. 12:38



 

 

     * 슬픈 사람  13 * / 윤철근

 

 

         ( 1 )


중국에 방 거사라는 성인이 있었다. 
어느 날 논 밭을 처분한 돈과
금 은 보석을 배에 싣고

동정 호수에 하나하나 버렸다.

 


이를 보고 버릴 거라면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왜 호수에 버리냐고
안타깝고 아쉬워 물었다.

 


돈에 속아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토록 유해한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냐고


 

일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모두 호수에 버리고는
손수 농사 짓고
대나무 그릇을 만들어 시중에 팔아 생활하며
한가롭고 평온하게 살았다.

 


하루는 딸 영조를 불러서
오늘 정오에 죽을 것이니
정오가 되면 알려 달라 하고는
방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데


 

딸이 일식이라 외치며 밖으로 불러냈다.
나와보니 일식이 아니라
이상한 생각으로 딸을 찾으니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어 있었다.


 

방 거사는 일주일 후에 열반에 들었고
방 거사 부인은
아버지의 열반 소식을
밭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 전했는데
아들은 그 말을 듣더니 담담히
일하던 괭이를 땅에 짚은 채 서서 열반에 들었다.

 


부인은 혼자 남아서
남편과 아들의 장례를 간단히 치르고
모든 정리를 마친 뒤에
단정히 앉아서 열반에 들었는데,


 

보라,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보라,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가!


 

어느 나라 대통령이
수많은 무리가 추종하는 종교 단체
그 누가 흉내낼 수 있을까,

 


앉아서 죽고
서서도 죽고
또 거꾸로 서 죽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진정 대자유인의 경지 아닌가.

 

 

         ( 2 )


방 거사를 비롯 부인과 아들 그리고 딸
모두가 생사를 초월한
삼천 대천 세계를
삼켰다 토했다 하는 대 도인들은


 

놀고 먹을 수 있는 재물을 스스로 버리고
농사 일 하고 대 그릇 만들어 팔면서
초라한 가난을 충만하게 살았는데


 

무명의 고통 속을 헤매는 사람들은
재물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이름을 숭상하고
권력에 집착하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분분하니

 


성인은 뜻을 세우지 않고 구름인 양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한가롭고 안온하여
범부와 초인의 삶은 절로 드러나는 것 같다.

 


만행을 멈추고 정착해 수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나의 말에
이제 자리 잡으면
목숨 걸고 정진할 거라 화사하게 웃는다.

 


이런 저런 한담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내린 눈이 하얗다.


 

조심해서 잘 가시라고
안녕히 계시라고
합장 인사하고
하얀 눈길을 걸어가는 그가


 

차서 시리고
밝아서 빛나는 것처럼
맑은 슬픔이 아련히 인다.


 

하늘을 본다.
아! 하늘이 말을 잊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스님, 부디 성불하세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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