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스크랩] == 슬픈 사람 10 ==

빛속으로 2005. 7. 9. 15:23


 

    == 슬픈 사람 10 ==


 

발그레 단청하는 그와 내 잔에
맑은 곡차를 채우고
어디 가 있는 곳 물으니
충청도 민가에서 떨어진 산 속이란다.

 

 

산길에서 추운 겨울에 파릇파릇 자라는
겨우살이 군락을 발견해서
하얀 눈을 헤집으며
큰 나무 위에 기생하는 약초를 따서
잘게 썰어 말려서

팔아 용돈으로 쓰는 모양이었다.


 

힘들게 수고해 번 돈을
보살의 사연에 불쌍하다며 
맛있는 저녁 사주고
공부하라 책도 사주고

훌륭한 법문까지 들려 보내고는

 

 

돈을 다 썼다며 지갑을 열어 보이는

장발의 스님에게

멀리까지 가려면 경비가 많이 들텐데
빈 지갑이 걱정되어 말하니
빙그레 웃으며
불쌍한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며
필요한 돈은 어떻게든 생기더라면서
그의 스승 얘기를 하늘거리는 깃발처럼 펼친다.

 


사월 초파일은 불가의 큰 명절이라
쌀이 열 가마니나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쌀이 다 없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는데
주지 스님이 팔아 치부한다는 소문이 떠돌더라는 것이다.

 


성인군자처럼 말하더니
양산군자라며 내심 못마땅한데
하루는 조용히 부르더니
어디를 다녀오자고 해서 졸졸 따라 나서며
쌀판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나 기대했는데


 

찾아 간 곳은
혼자 사는 노인이나
쓰러져 가는 초막에서 병들고 어럽게 사는 사람들
어떻게 사느냐 불편한 게 뭔지 물어 보는 방에

쌀가마니가 놓여있고
거동이 불편한 집 부엌에

연탄이 수북히 쌓여 있더라고


 
몰래 표시를 해놓아
절에서 온 쌀인 줄 알 수 있었다며
못된 장난하다 들킨 아이처럼

계면쩍어 끼득끼득 백합꽃을 피운다.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글쓴이 : 도솔천 명상센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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