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슬픈 사람 (1- 4)

빛속으로 2005. 5. 14. 20:45


 

 

 

 

          슬픈 사람

 

 

       ( 1 )

 

내가 잘 아는 스님이 있다.

그는 일년 전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다.

 

어느 날인가 바람처럼 훌쩍 떠났다가

보살 님 한 분을 데리고 불현듯 찾아왔다.

 

오랜 만에 만나니 반가웠는데

동행한 보살(여자 불자)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며 책 한권을 골라 주니

 

보살 님은

"고맙습니다" 합장하여 곱게 인사하며

책을 받아들고는

 

값을 계산하려는데

극구 말리며

책을 사주고 싶어 함께 온 거라 제지하며

 

전에 기거하던 절에

공부도 할 겸

새로 온 공양주 보살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공부하는 사람을 보면 참 좋다며

그래서 책도 사주는 것이구

뭐든지 다 해주고 싶다면서 빙그레 미소한다.

 

지갑에서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계산을 치르고
남은 전부인 천 원 짜리 몇 장을 꺼내 보이며

계면쩍게 웃는데

 

지갑에 들어있던 돈은

깊은 산 속의 큰 나무에 기생하여 자라는

겨우살이를 따서 말린 약초를 팔아 받은 돈이다.

 

다 쓰고 이제 얼마 안 남았다구

말하며 웃는 모습이 마치 아침 햇살 같다.

 

 

 

 

    ( 2 )

 

 

머리 기른 지가 어느 듯 일년 반이 되었다는 스님은
공양주 보살의 얘기를 꺼내며
집에는 거동이 불편한 늙은 시어머니와
반신불수인 시아주버니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데

 

남편은 바람이 나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술 먹고 집에 들어와서는 욕하고 때리기 일쑤라
아이들만 아니라면
이혼하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들지만


어린 두 아이들을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어
참으며 살아간다는 보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살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절에 다니는 신도가 운영하는 식당에 데리고 가
돼지갈비를 사주었는데
고기가 상한 듯 보이지만

먹어보니 맛이 참 좋더라고 껄껄 웃는다.

 

아저씨가 유명한 고깃집에서

몇 년간 일하면서 배운 솜씬데
나름대로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오면
아저씨가 만든 것이 아닌 줄
용케도 안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음식점 보살이

반갑게 맞으며 합석하여 얘길 하더라며

 

음식 맛은 정성과 손끝에서 나오는데
요즘은 위생적으로 한다고
고무장갑 끼고 설렁설렁 음식을 만드는데

그건 잘못된 인식이며
맨손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깊은 맛이 난다고
혀를 찬다.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어보면

젊은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
여자와 남자가 만든 것에
 차이를 느끼는데


만드는 사람의 기가

음식의 맛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구 
그래서 일류의 요리사는

여자 보다 기가 왕성한 남자가 많아요 한다.

 

 

 

  ( 3 )

 

 

처음 식당을 개업했을 때는 아주 잘 되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는데
근년에 특히 요즘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 했다.


손님이 없어 썰렁한데

문을 연 이상 난방도 해야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영 적자라 했다.


요즘은 모든 업종이 다 불경기라는데

그 집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가계를 내 놓아도

나가지 않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안 주인에게

장사를 그만 두겠다고 마음 먹고 짜증나 있으면

 

손님이 들어오려고 했다가도 발길을 돌린다구

마음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는 날까지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그러구 앉아서 얘길 나누며 식사 중에
식당 문을 열고

한 두 명도 아니고
스무 명 가까운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 왔다고 했다.


손님이라곤 함께 온 보살과 자신뿐이던

썰렁한 가계에
스무 명 가까이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식당보살의 얼굴이 활짝 피어나서
고기도 듬뿍 주고 가격도 싸게 해 주더라며


자신이 가게에 들어가면

손님이 이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전에 어떤 집에서는
하루에 한번씩 들려달라 했다는 말을 전하며


자신이 가서 손님이 오면

왠지 기분이 좋다고 빙긋이 웃는다.
사심 없는 맑은 웃음이 꽃보다 화사하다.

 




 

 

      ( 4 )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찻잔이 바닥을 드러내어
곡차 한 잔 하시겠냐고 넌지시 던지니
좋다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난 술을 곡차라 부른다.
술을 곡차라 부른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곡차라 부르는 것이

더 정감이 가고
품위(?)가 있는 것 같아 즐겨 부르는데


실제로 곡차라 부르며

차를 마시듯이 여유롭게 마시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기분도 흥겹고
과음을 않아 많이 취하지도 않으니 
비싼 술 먹고 주정하는 추태는 부리지 않게 된다.


술 마시고 주정한다는

혹 그런 얘길 듣는다면


주정 받는 사람은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고
본인도 환영받지 못하고 후회스러운

이래저래 손해니

술 말고 곡차를 마시길 권하다.


곡차 운운에

우리 집 보살은 뽀르르 옆집 가계에서
진로와 간단한 안주상을 내왔다.


소주를 곡차로 바꾸어
시원스럽게 한잔 쭉 마신 스님은


군인들이 입는 야전잠바에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군복 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나부끼며 절에 오니


새로 온 (책을 사주었던) 공양주 보살이
촌부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하는데
주지스님이 스님이라고 부르니 어리둥절하며


조용한 시간에 살짝 찾아와서는
"주지 스님이 스님이라 던데,,
정말 스님이 맞나요?"

그래서 대답 대신 빙그레 웃으니

 

"스님이 왜 머리를 길렀어요?"
라고 또 묻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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