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듬으며 명상일기

천둥번개가 치고 벼락이 쏟아지던 날!

빛속으로 2015. 9. 1. 12:31

 

 

  번쩍! 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쾅! 천둥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폭죽놀이처럼 번갯불이 사방에서 번쩍거리고 천둥소리가 고막을 찢으니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그렇게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치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옆집에 또 앞집에 벼락이 마구 떨어졌다. 벼락을 맞아서 집들이 무너지고 부셔지며 불이 활활 타올랐다. 우박이 내리듯 번갯불이 천지 사방에서 번쩍거리고 벼락이 떨어지면서 지진이 난 것처럼 우리 집이 마구 흔들렸다.

  우르릉거리며 온 대지가 파도처럼 진동하니 두려움과 공포의 극치였는데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건 꿈이었다. 어젯밤 꿈이었는데 나는 꿈속에서 현실과 조금도 다름없이 느꼈다. 언제 벼락이 우리 집을 내리쳐서 내 머리 위에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벼락에 맞아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나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번쩍! 번쩍! 우르릉~ 꽝! 꽝! 쉴 사이 없이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므로 금방이라도 벼락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당황하여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며 숨거나 이불을 뒤집어쓰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꿈에서 깨어 나를 돌아 본다.
  나의 몸이란 음식을 먹으므로 유지되는 것으로 색수상행식(오온)의 인연이 모여 잠시 이루어졌을 뿐 실체가 없다. 환상과 같은 <나와 몸>에 대한 애착에서 그만큼 벗어난 듯하다.

 

 

  젊은 날 나는 늙어서 죽는 꿈을 꾸었다. 죽어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과 애통함으로 꺼이꺼이 흐느껴 울다가 깨어났는데 베개를 만져 보니 꿈에서 흘린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젖은 베개를 손으로 만지면서 아,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무척 당황되고 두려웠다.
  그날 이후로 생사의 비밀과 죽음을 초월하는 묘법을 찾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던 어느 날이었다. 서향의 유리문으로 나를 찾아온 햇살이 아장아장 걸어 경향신문에 연재되는 최인호 씨의 ‘길 없는 길’ 위에 머물면서 빛났다.

  난 당시 화두에 전념하느라 신문을 읽지 않았으며 모아서 버리고 또 쌓아 놓은 신문더미 위에 햇살이 눈부시게 눈부시게 비추므로 무심코 읽게 되었는데 세상을 초탈한 신선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너무 황홀하여 자력의 끌림처럼 경허의 자취를 따라서 걷게 되었다.

  경허는 어릴 적 스승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가던 길에 해가 저물어 요기도 하고 하룻밤 묵어갈 양 마을을 찾아들어갔다. 그런데 낮선 손님을 맞는 개 짖는 소리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도 없는 고요한 정적을 괴이 생각하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물어 보니 무서운 역병이 휩쓸고 있어 산사람은 모두 떠나고 죽은 자와 병든 이만 남아 있다고 했다.
  콜레라가 점령한 비가 뿌리는 마을에서 죽음과 정면으로 딱 마주하자 공포로 정신이 아뜩했다. 학인들 앞에서 병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죽음도 없다고 쩌렁쩌렁 울리던 기상과 기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도인처럼 말할 땐 막힘이 없었는데 막상 죽음을 만나보니 깜깜 절벽이라 뒹구는 시체 곁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한낮 이해일 뿐 생사의 문을 진실로 통과하지 못했음을 절감했다.
  그는 옛 스승을 찾아가던 일을 취소하고 동학사로 되돌아와서 방문을 꽉 걸어 잠그고 일천칠백 공안 가운데 목에 걸린 가시처럼 유독 찜찜하던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라는 화두를 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밤과 낮을 꼼짝도 않으니 마치 태산과 같았다.
 턱밑엔 뾰족한 송곳을 받쳐 들고 수행하다 잠깐이라도 졸면 송곳은 사정없이 얼굴을 푹푹 찔러서 마른 피 위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니 귀신이 보고 놀라서 도망갈 지경이었다.
  치열하게 정진해가니 무릇 악귀처럼 달려들던 잠이 완전히 사라지고 화두만 홀로 대낮처럼 밝고 또렷하게 한겨울을 치달리고 있었는데 마침 학명스님이 탁발을 나가 이거사 댁에 들렸다. 이거사는 시주를 하면서 학명에게 물었다.
  “스님이 되어서 공부하지 않으면 죽어서 소가 된다지요?”
  “시주물을 받은 지중한 업으로 그 집에 소가 되어서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문이 되어 그렇게 말하면 되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셔야지요.”
  그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뜻을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절에 돌아와서 대중에게 물으나 아는 사람이 없자 오랫동안 굳게 잠겨 있는 경허의 방문 앞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었다.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이 치듯 번쩍! 했다.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는 소를 보고 경허가 화두를 타파하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는데 나는 그 장면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시공을 초월하여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는 소>를 나도 똑같이 본 것이다.

  수미산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며 일체가 텅 비어 걸림이 없는 깨끗한 세계! 공(空), 공(空),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던 화두가 타파되며 허공과 같은 적멸!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비밀의 문을 열고 마침내 생사가 없는 세계를 보았는데 아마 그 덕분에 천둥과 번개가 쏟아지는 한가운데서도 담담할 수 있었나 보다.

 

 

     < 천상의 무지개 > 수필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