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듬으며 명상일기

무엇이 "장애인" 인가!

빛속으로 2015. 8. 20. 09:11

 

 

       무엇이 장애인 인가!

 

 

  늦은 저녁 무렵 비구니스님이 구지선사를 찾아왔다. 커다란 주장자를 쿵쿵 울리며 선사의 주위를 한 바퀴 빙 돌고는 인사도 없이 턱 버티고 서 있었다. 불가의 통념상 비구니(여자스님)가 비구(남자스님)에게 먼저 예를 갖추어야 하며 더구나 존경받는 대강사께 공손히 절을 올림이 마땅하건만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는지 묵묵히 서 있으므로 하다못해 구지스님이 먼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키가 훌쩍 크고 당당해 보이는 비구니스님이 대답했다.
  “청룡선사 문하에서 왔습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그만 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시게.”
  “스님께서 한마디만 바르게 일러준다면 자고 갈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그냥 갈 것입니다.”
  날이 저물었으니 자고 가라는 말에도 그녀는 버티고 서서 한 가
지만 물어보겠다고 했다. 물음에 바르게 대답해 주면 자고 갈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겠다는 비구니를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무엇이 궁금한지 말해 보시게.”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빼고 스님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자신의 말을 해 보라는 말에 아무리 생각을 굴리며 찾아보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이나 선배 스님들의 행적과 언구뿐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려니 비구니는 커다란 주장자를 쿵쿵 울리며 획하니 떠나갔다.

  불청객으로 찾아온 비구니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하여 자존심이 매우 상한 구지는 그녀가 떠나간 뒤에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범종을 쾅! 쾅! 울려서 모든 대중을 모이게 한 후 각자 인연처로 돌아가라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참다운 말을 찾기에 골몰했다. 대중들은 모두 떠나고 시자 한명만 남아서 갖다 주는 밥을 먹으며 종일 오직 자신의 말을 참구하던 어느 날이었다,

  엉덩이를 방바닥에 딱 붙이고 자신의 말을 골똘히 찾고 있는데 밖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스님은 지금 참선 중이므로 아무도 만나 주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십시오.”
  “구지스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러네. 꼭 만나 보고 가야겠네.”

  시자의 말에 이어 손님의 말이 들려왔다. 만나 보겠다 하고 안 된다고 하는 소란한 실랑이에 구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시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때 손님이 구지를 보더니,
  “스님이 구지선사십니까?”
  “네, 제가 구지입니다만, 무슨 일이신지요?”
  “아, 그러십니까, 다름이 아니옵고 일전에 제 문하의 비구니가 스님께 찾아와서 무례를 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신 사죄하려 왔습니다.”
  “아, 그럼 스님이 천룡선사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사님을 한번 찾아뵈려고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와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는 천룡선사를 방 안으로 모시고 공손히 절을 올린 후에 물었다.
  “경전의 말씀 말고 스님의 참다운 말씀은 무엇입니까?”
  천룡은 아무 말 없이 오직 검지손가락을 불쑥 세워서 보였다. 그 순간 크게 깨달았다. 그 후로 평생을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이는 법문을 했으니 그래서 구지선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손가락 법문으로 많은 이들을 깨우치니 소문이 천하에 퍼져서 손가락 법문을 들으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하루는 구지선사가 볼일이 있어 절을 비운 사이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선사가 출타 중임을 알고는 씁쓸히 발길을 돌리는데 시자가 다가와서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다.
  “구지선사님께 법문을 들으러 왔는데 출타 중이시라 아쉽게 그냥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저는 스승님의 법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지선사님의 법을 보여 드릴 테니 한번 보시겠습니까?”
  손님은 시자의 말에 반색하며 선사의 법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시자는 구지가 항상 하던 모습 그대로 검지를 불쑥 세워서 손님에게 보여 주었다. 그 순간 손님은 활짝 깨달았다.

  자성을 깨달은 손님은 시자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며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기뻐서 싱글벙글거리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마침 볼일을 마치고 절로 돌아오던 구지선사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구지는 싱글벙글하는 그에게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그네는 선사를 만나러 갔던 일과 시자가 손가락을 펼친 것을 보고 깨닫게 된 경위의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구지는 손님의 말을 듣고 축하하며 절로 돌아와서 시자에게 무슨 일이 없었는지 시침을 떼고 모른 척 물어 보았다. 그러자 시자는 큰스님이 안 계시는 동안 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법을 물으므로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여 주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구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이 무엇이냐?”
  그러자 시자는 거침없이 검지손가락을 불쑥 세워 보였다. 그때 구지는 시자의 손가락을 날카로운 칼로 싹둑 잘라버렸다. 끊어진 손가
락에선 피가 솟구쳤는데 시자는 철철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움켜잡고 무엇을 잘못했는데 손가락을 자랐냐고 분개하며 원통해서 엉엉 울며 떠나갔다.
  그때 선사가 그를 불렀다. 시자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물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이 무엇이냐?”
  그는 평상시 하던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검지를 세워 보였다.
  그러나 세워도 없는 손가락을 보는 순간 크게 깨달았다.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는 말이 있다. 구지선사의 시자는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죽음이 없는 영생의 몸을 얻었다.

 

  어느 도인은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를 거부하며 혼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구도의 열정으로 불타는 사람이 신비인의 집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누구의 입

실도 허락지 않던 주인은 예외 없이 이방인을 문밖으로 밀쳐냈다.

  못 들어오게 막는 완강한 주인의 거친 반대에도 기필코 들어갈 태세로 호흡을 가다듬고 힘껏 문을 열고 한쪽 발을 문지방 안에 얼른 집어넣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은 손님이 방 안에 한 발을 들여 놓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세게 닫으니 '쾅' 소리와 함께 구도자의 발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활짝 깨쳐 대오하였으니 불사조가 되었다.
  발이 부러져서 절룩거리는 것이 결코 장애가 아니며 생로병사의 불치병에 걸린 것이 큰 장애다.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죽음이 없는 불멸을 깨닫는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은 없다.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서 참으로 거룩한 법을 만났다면 부지런히 수행하여 불사조가 되소서!**

 

 

             < 천상의 무지개> 수필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