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스케치

[스크랩] 길 위의 가여운 벌레

빛속으로 2012. 12. 2. 12:39

 

 

 

  길 위의 가여운 벌레

 

  손가락 한 마디쯤이나 되는 꽤나 큰 집게벌레가 어딘선가 나타나 방안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부좌를 하고 고요히 앉아 있고 벌레는 열심히 기어가는데 조금 후에 보니 커텐을 타고 끙끙거리며 오르고 있습니다. 사력을 다하여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커텐을 타고 오르는데 그 끝까지 올라가봐야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아등바등 아슬아슬하게 기어오르는 것이 어리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저길 힘들게 왜 오르는 거지?"

  저 녀석은 쓸데없이 힘들게 커텐을 타고 오른다고 하니,

  "모두가 그렇게 바쁘게 살지요. 바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뿐일 걸요,,"

  집사람은 미소처럼 던지고 외출한다며 문을 열고 나갑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서 부지런히 가꾸어 곡식을 수확하여 음식을 먹듯이 나도 또한 마음의 밭에 악의 잡초를 뽑고 선의 좋은 씨앗을 뿌려서 정진으로 가꾸어 평안을 수확하여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집 보살님은 내가 (부질없이) 나돌아다니지 않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가 봅니다. 한가한 듯하지만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건만,, 

  집게벌레는 커텐을 타고 오르다가 높은 곳에서 뚝 떨어졌는지 다시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습니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이리 분주할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는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사색하여 확실한 목표와 신념을 가지고 가는 것인지 무작정 가고 있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녀석은 방안을 한바퀴나 빙돌아서 여전히 바쁘게 허덕이며 기어가고 있는데 거추장스런 몸뚱이를 이끌고 가느다란 네 발로 기어가는 모습이 이제는 지친듯 움직임이 많이 둔화되어 애처롭고 가엽게 느껴집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도와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돕는 것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우려고 했다가 오히려 방해를 한다고 '남의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지 말고 그대 일이나 잘 하슈.' 라고 버럭 화를 낼 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는 고요히 앉아있고 집게벌레는 여전히 집시의 방랑자처럼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데 가던 길을 멈추고 왜 이러한 몸을 받고 이렇게 방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지 고요히 명상이라도 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깊이 사유하다 보면 망상이 가라앉아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해지면 알 수 없었던 바르고 참된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기묘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좋은 친구나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서 예를 갖추고 정중히 물어본다면 수고로움을 적게 하고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음의 먼지가 덕지덕지 덮여서 시력마저 잃은 벌레는 변변찮은 더듬이로 더듬거리면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허덕이며 기어갑니다. 녀석은 자신이 성자와 같은 거룩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우리도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사색하며 관찰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진리를 알 수 없다면 좋은 친구나 훌륭한 스승을 찾아뵙고 문답하여 높고 숭고한 가치의 목표를 세우고 이상향을 향해 가야 합니다.

  좋은 친구와 훌륭한 스승은 캄캄하고 거친 바다를 나침반도 없이 항해하는 외롭고 고달픈 사람들을 위한 등대의 불빛과 같습니다. 탐욕과 증오가 불타는 무명의 길을 버리고 진실하고 복된 지혜의 길을 걷는 것이 생소하고 서툴며 처음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게으르지 말고 굳은 의지로 황소처럼 뚜벅뚜벅 정진하면 머지 않아 평안과 행복의 아름다운 미래와 만날 것입니다.

 

 각우 윤철근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글쓴이 : 빛속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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