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스케치

[스크랩] 악마의 갈고리

빛속으로 2012. 7. 20. 13:34

 

 

 

  악마의 갈고리

 

 

  악마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 부지불식간에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무엇을 악마라고 할까요? 감히 나에게 적대적 감정을 품고 나를 괴롭히고 피해를 주며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나 대상을 내 입장에서 악마라고 할 것입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머리에 뿔이 달린 괴이한 모습의 맹수나,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의 모습을 한 것, 여러 개의 손에 괴상한 무기를 든 괴물이나, 입에서 피를 흘리며 어두움 속에서 덤비는 귀신처럼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악마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악마왕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있습니다. 색수상행식(형상 느낌 생각 의지 인식)의 다섯 가지 요소의 모임인 몸과 마음은 악마왕이 사는 터전입니다. 악마왕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악마왕에게는 여섯 개의 은밀한 갈고리를 가지고 있는데 눈 귀 코 혀 몸 뜻입니다.

  눈은 밖으로 산, 들, 강, 구름, 나무, 사람, 동물, 물고기,,, 천태만상의 형상과 사물을 대합니다. 눈이 형상을 보고 인식하므로 좋아하고 싫어하며 좋지도 싫지도 않는 느낌이 생깁니다. 그런데 모든 형상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쉼없이 변하고 사라지므로 그것에 집착하면 반드시 걱정과 슬픔과 고통과 번민이 일어납니다.

  봄의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봄이 머무는 동안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곧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며 겨울을 맞게 됩니다. 계절은 순환하는 것이 법칙이라서 봄이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으며 봄이 속절없이 떠나가고 나면 슬프고 의기소침할 것입니다.

  이처럼 눈으로 인하여 근심과 슬픔과 고통이 찾아오게 되므로 결국 눈은 악마의 갈고리입니다.

  눈이 악마의 갈고리인 줄 알았다면 눈이 사물을 대하여 좋다 싫다 평가하더라도 그것에 애착하며 소유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무상하여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분명한 이치를 깨달아 봄이 오면 봄을 즐기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즐기고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고운 단풍숲을 걷고 겨울에는 하얀 눈밭을 사박사박 평화롭게 걸으세요.

  또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들판을 걷고 화창한 날에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운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 대로 즐겁게 감상하면 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영혼의 눈입니다.

  그리고 귀가 소리를 듣고 인식하여 칭찬을 들으면 좋아하고 우쭐하며 비난의 말을 들으면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분노하므로 귀는 결국 악마의 갈고리입니다.

  유명한 가수가 출연하는 음악회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가수의 노래가 많은 청중들을 끌어모은 것입니다. 소리에는 이처럼 신비한 마력이 있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쁨으로 흥겹게 춤추는가 하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나는 전형적인 촌사람이라 음악회같은 곳에 가지 않는 편이지만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슬픈 노래를 즐겨 부르던 가수가 일찍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데 그처럼 소리가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그래서 난 뜨거운 사랑과 애절한 슬픔을 표출하는 노래는 일부러 피하며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을 듣습니다. 그것이 편안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코는 냄새를 맡고 인식하여 좋고 나쁜 냄새를 구별하여 나쁜 냄새는 싫어하고 좋은 냄새는 탐하므로 그러므로 코는 악마의 갈고리인 것입니다.

  코가 악마의 갈고리라는 것을 알면 냄새를 맡더라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혹적인 고급 향수를 몸에 뿌리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조작된 향기는 곧 사라집니다. 그보다는 마음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가꾸어 내면의 향기가 은은히 발산하도록 해야합니다. 내면의 맑고 고운 향기는 썩거나 변하지 않는 만년이 흘러도 영원히 고귀한 것입니다.

  또 혀는 음식의 맛을 보고 이것은 좋다하고 저것은 싫다고 구분하여 혀가 요구하는 음식을 찾아서 천리길도 마다 않고 찾아갑니다. 이곳에 방송을 탄 유명한 음식점이 몇 곳 있는데 공휴일이나 연휴는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전국 각처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쭉 줄을 늘어서 장관입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먹지 않으면 몸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허기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먹습니다. 몸을 유지하게 위해 괴로움을 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풍요로운 시대라서인지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기보다는 입맛에 따라 골라 먹습니다. 입맛이 거부하는 음식은 식탁에서 치우고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가서 진미의 음식을 주문해 먹습니다. 지구상에는 먹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도 참 많은데 너무 많이 먹어서 뚱뚱한 비만이 됩니다. 그러면 헬스클럽에 가서 살을 뺀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합니다.

  조금 덜 먹으면 위도 편하고 입도 편하고 몸도 날씬하게 유지할 수 있고 건강에도 좋고 경제에도 유익하며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면 너무도 좋을 것인데 맛에 코가 꿰어서 여기저기 끌려다니니 혀는 곧 악마의 갈구리인 셈입니다.

  또 몸은 밖의 대상과 접촉하여 좋다거나 싫다고 인식합니다. 유원지에 나가보면 남여가 손을 꼭잡고 걷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서로 좋아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복하게 걷는 것입니다. 예쁜 소녀는 멋진 왕자를 기다리고 건장한 청년은 아름다운 공주를 기다리며 결혼적령기에 이르면 부모는 자녀가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갈망합니다. 

  사람들은 보금자리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며 삽니다, 그것은 삶의 기쁨이고 즐거움인데 육체의 쾌락에 빠져서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고 가정이 파탄되어 자식들은 눈물을 흘리며 결국 그 자신도 파멸하니 몸은 악마의 갈고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사랑해선 안되며 사랑한다는 말이 듣기 좋기는 하지만 요즘 너무 흔하게 쓰는 것 같습니다.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있지만 사랑해선 안되는 대상도 있으니 어쩜 사랑이란 절제가 더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뜻이 법을 만나서 좋고 나쁘며 옳고 그르다는 관념이 생기며 그것에 집착하면 으레 걱정과 슬픔과 고통과 번민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뜻은 악마의 갈고리가 됩니다.

  이처럼 여섯 감관에 악마왕이 존재하며 눈 귀 코 혀 몸 뜻이 악마의 갈고리인 줄 알고 항상 조심해야 하며 결코 방심해선 안됩니다. 크거나 작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밤이나 낮이나 성인이나 범부나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추듯이 마음을 늘 밝고 청결하게 해야합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듣고 배운 바가 없어서 지혜를 모르면 악마왕의 여섯 갈고리에 코가 꿰어서 생사를 윤회합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악마왕의 갈고리에 꿰어서 뒷바퀴가 앞바퀴를 따르듯이 생사윤회의 근심 걱정 슬픔 고통 공포의 미로 속으로 어쩔 수 없이 부지불식간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오욕(五慾)이 악마왕의 갈고리인 줄 알아서 코가 꿰여 끌려다니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칼날 위를 걷듯 깨어서 철저히 방비하면 아무리 교활하고 간악한 악마왕일지라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사실 악마왕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무서운 상대지만 실체가 없는 허깨비와 같습니다. 그를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몸과 마음에 살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란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근본이 공(空)함을 깨달으면 악마는 정체가 탄로나 번개처럼 도망가고 대신 지혜의 광명이 떠오릅니다.

  물질인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 이 몸뚱이는 백년도 못가서 늙고 병들며 허물어져 죽고 사라집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무상한 몸뚱이를 사랑하고 애착하면 괴로움이 따르므로 물거품처럼 보고 애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비물질인 마음은 느낌 생각 뜻 인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은 그래도 몇 십 년까지도 존재하지만 마음은 더 빨리 변하고 사라지는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꿈과 같습니다. 실체가 없어서 찰라로 변하는 것을 사랑하고 집착하면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게 되므로 애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허깨비인 줄 알고 또 여섯 감각기관이 악마왕의 갈고리임을 명확하게 알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떠나 고요하고 자애롭게 생활하면 그물망을 벗어나서 훨훨 나는 새처럼 한가롭고 평안합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논리지만 매우 깊은 이치라서 한 번 듣고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듣고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면 무슨 거룩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육조 혜능대사처럼 숙세에 수행한 인연이 있어서 한마디의 말에 진리를 깨닫기도 하지만 살이 깊은 고기를 서서히 구워서 익히듯이 오랜 세월을 자꾸 반복해서 명상하고 관찰하며 수행하여 영원한 삶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1897년 11월 15일, 학명스님은 마을로 탁발을 나가서 도인이라 소문난 이거사로부터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합니다." 라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몰라 궁금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는 절로 돌아와 대중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자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 꼼짝도 않고 있던 경허스님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번쩍! 하고 뇌성벽력이 치듯 화두를 타파하고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으니 이로써 오랜 겁 동안 겹겹이 쌓았던 수미산이 찰나에 무너지고 텅 빈 본래의 맑고 밝은 거울이 여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독히도 교활하고 간악한 악마왕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은산철벽같던 생사의 관문을 뚫으니 무애의 대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마침내 수행이 익으면 한마디의 말에 자신의 근본을 깨닫습니다. 자기를 깨닫는다는 것은 곧 우주의 실상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고 말하면서 우주의 근본과 실상을 모른다고 하면 높은 깨달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무량겁 덕지덕지 때묻은 거울을 깨끗이 닦아서 더 이상 악마왕이 교묘하게 숨어서 괴롭힐 자리를 소멸시켜야 합니다. 악마왕을 용감하게 무찔러 항복받으면 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인 죽음의 신도 예경하는 위대한 성자의 지위에 오릅니다. 아, 얼마나 장쾌하고 거룩한가요! 

 

 각우 윤철근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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