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스케치

[스크랩] 저승사자의 눈

빛속으로 2012. 7. 16. 12:28

 

 

 

  저승사자의 눈

 

 

  어느 절의 주지스님이 밤에 자고 있는데 시커먼 두 사람이 문을 열고 스스르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물었다. 

  "누, 누, 누구세요?"

  "저승사자니라. 이제 갈 때가 되어서 데리려 왔노라."

  저승사자라는 말에 그는 매우 당황했다. 도를 배우려고 출가했지만 수행보다 절의 일을 보면서 바쁜대로 그럭저럭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저승사자가 찾아왔으니 두려움에 온 몸을 벌벌 떨면서 애원했다. 

  "아직 갈 준비가 안 되었으니 며칠만 말미를 주십시오."

  "그럴 수 없느니라.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자."
  잡아끄는 저승사자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여지껏 제 공부는 하지 못하고 절의 일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더도 말고 딱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일주일간의 말미를 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저승사자는 그가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아는지라 일주일만 여유를 달라고 통사정을 하므로 마지못해 들어주기로 했다.

  "좋다. 그럼 딱 일주일 간의 시간을 줄 것이니 다시 군말하면 안 되느니라!"

  "예, 예, 딱 일주일만 시간을 주신다면 더 바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지스님은 통사정하여 겨우 일주일의 시간을 얻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 이후로 이런 저런 것 다 팽개치고 방에 틀어박혀 방법을 모색하는데 금방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훌쩍 지나갔다. 밥 먹는 것도 잊고 잠도 자지 않아 눈이 퉁퉁 붓고 뻘겋게 충혈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어느 듯 엿새 째가 되었다. 이제 저승사자가 찾아올 날이 딱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이 궁리 저 궁리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도대체 답이 나오지 않으므로 천하에 선풍을 드날리고 있던 조주도인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허겁지겁 달려서 저승사자가 오기로 되어 있는 날의 저녁이 되어서야 조주도인이 계신 곳에 당도했다. 도인의 방으로 급히 들어가서 인사를 올리고 며칠 전에 저승사자가 왔던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물었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난 도인은 자신의 뒤에 붙어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때 막 저승사자가 방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저승사자가 온 것를 보고 두려워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지켜보고 있는데 일주일 전에 왔던 두 저승사자는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찾는 것 같았으나 괴이하게도 조주도인 뒤에 있는 걸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는 분명 저승사자가 보이는데 저승사자의 눈에는 자신이 안 보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오늘 저승으로 데리고 갈 자가 보이지 않는다."

  라고 중얼거리더니 한참만에 사라졌다.

  조주도인은 자신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죽음의 사자가 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그후 그는 주지직이고 뭐고 다 버리고 열심히 정진하여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우리도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저승사자가 찾아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대 도인이 되어야 한다.

  조주(趙州)도인을 고불(古佛)이라 부르는데 고불(古佛)이란 오래된 부처란 뜻이다. 조주는 어린 나이에 서상원(瑞像院)이라는 절로 출가했는데 동자가 뛰어난 법기임을 알고 남전선사를 친견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어린 조주동자는 남전선사를 찾아가서 공손히 큰절을 올렸다. 그때 남전선사는 평상에 비스듬이 누워있었는데 동자승의 인사를 받고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瑞像院)에서 상서로운 형상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형상은 보지 못하고 누워계신 부처님은 뵈었습니다."

  동자의 대답에 누워있던 선사는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엉?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날씨가 찬데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고불 조주는 전생에 이미 공부가 깊은 분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린이가 능히 할 수 있는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주선사는 바람처럼 천하를 유람하다가 80세에 절을 세워 120세까지 후학들을 지도했는데 진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멀리서 찾아와 인사를 올리면 동쪽에서 온 사람이나 서쪽에서 온 사람이나 밥을 먹었거나 안 먹었거나 차별하지 않고 말했다. 

  "차나 한잔 하시게."  

  그런데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에 차를 마시면서 도를 깨달았다고 하니 과연 고불(古佛)의 풍모다.

조주도인이 차를 마시라고 하니 우리도 차를 마시자. 주위를 다 물리치고 조용한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자. 근심 걱정 슬픔 욕망 번뇌를 다 내려놓고 차를 마시자. 차를 마시는 물건이 바로 주인공이다!

  잘 모르겠으면 방을 옮겨서 마시자.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알 때까지 마시자. 차를 마시다가 죽어도 포기하지 말고 죽은 몸뚱이에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오고 썪는 냄새가 진동하는 옆에서도 마시고 완전히 썪어서 해골만 덩그런 방에 오뚝하게 앉아 차를 마시자. 그러면 마침내 깨달을 것이다.  

 

 

  불기 2554년 5월 19일 각우 윤철근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글쓴이 : 빛속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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