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2)

빛속으로 2008. 8. 12. 12:20

 

 

 

2007년 3월 6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혹 자문을 해 본적이 없는가,

내가 바로 보물 중의 보물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이 글을 쓰며, 부르면 듣고 대답하며,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는, 이 물건이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하고 소중한 보물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고 쓰면서도 정작 이 물건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당황하며 모른다 고개를 뱅글뱅글 젖는다.

보라! 보는 것!

이것이 참다운 보물이다.

보는 것은 육체의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눈은 높다 낮다 크다 작다 하고 네모인지 세모인지 둥근지를 식별하여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쁨을 분별한다.

그러나 보는 성품이란 대상을 보고 의식과 작용하여 좋고 나쁜 분별을 하기 이전의 순수하게 사물을 보는 자체를 말한다. 이 보는 성품은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고 몸뚱이가 썩어 없어져도 불멸하는 물건이다.

또, 듣는 것! 이것이 보물이다.

귀로 소리를 듣고 소리가 거칠다거나 부드럽다거나 감미롭다고 느끼는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성품 자체를 말한다.

소리를 듣는 성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성품으로 이 몸뚱이가 없어져도 듣는 성품은 불변하는 보물이다.

보고, 듣는, 느끼고, 아는, 성품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생각으로 느끼며,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므로 밖으로 가난하게 헤매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귀중한 보물을 잊었는데 보고 듣는 것은 우주에서 유일의 보물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바로 알면 색성향미촉법의 여섯 도적놈이 여섯 지혜로 바뀌어서 중생이 성인의 지위에 오른다.

보고 듣고 아는 스스로의 자성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머리에 뿔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눈에 영롱한 광체가 더 빛나는 것도 아니며, 이 사람은 깨달은 성자다 라는 글귀가 얼굴에 새겨지는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인 아무 것도 없으며 밥 먹고 일하고 오고 가며 잠자는 순수한 일상이 도인의 생활이다. 맑고 고요하고 밝아서 번뇌 망상이 없고 욕심이 없으니 한가로운 생활이 영리하지 못해서 마치 바보와 같을 지도 모른다.

범부와 성인이 다르지 않아서 함께 있어도 알 수 없는데 성인은 낮추고 겸손하며 하심하니 더욱 알기가 어려우며 수행이 깊어지면 하늘을 닮은 사람이 하늘을 닮은 사람을 느끼듯이 그렇게 스스로 알아간다.

수행을 하다 보면 예지력이나 지관력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전생이나 미래가 보이는가 하면 병을 치유하는 능력도 생긴다. 다른 종교에서는 마치 기적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을 보통으로 체험하며 특별한 능력이 생기기도 하지만 불가에서는 이를 대단하게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신통이 생사의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에 오르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이 점을 치는 것으로 생활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만물이 자신의 진가를 몰라도 각자의 여의주를 사용하며 살아가며, 참다운 수행자는 발걸음 옮기는 걸음마다 청정한 연꽃이 핀다,

 

             覺牛 윤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