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고설반야바라밀다주즉설주왈-3)

빛속으로 2008. 8. 4. 11:56

 

 

2007년 3월 4일

 

 

고설반야바라밀다주즉설주왈(故設般若波羅密多呪卽設呪曰)은 협의로 적용하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인데 광의로 적용하면 반야심경의 전체 문장인 270자 전체가 주문인 셈이다.

저 언덕에 이르는 반야바라밀다 주문에 의지하여 속히 생사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 

 

 

*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무명보살은 아침 자리에서 채 일어나기도 전에 내게 더위를 팔고는 희죽이 웃는다.

나는 보살에게 무방비로 당하고 빙그레 웃어 주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고 무심코 대답하면 얼른 '내 더위 사가라!' 하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외치며 더위 팔았다고 좋아하며 동네를 휘젖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밤이 되면 추수가 끝난 허허 벌판으로 나가 깡통에 구멍을 숭숭 뚫어서 솔갱이를 담고 불씨를 넣어 돌리면 캄캄한 밤하늘에 불꽃이 둥근 원을 그리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어렸을 적에는 정월 보름이 큰 명절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풍경을 보기가 어렵다. 화재의 위험 때문이니 풍습도 문화도 세월을 따라서 변한다.

아침에 부스럼을 깨물고 오곡밥을 해먹으며 물고기를 위하여 밥을 나이 만큼 떠서 소지종이에 싸서 보름달이 뜬 물가로 나가 고기 먹이로 던져주며 가정의 무고와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던 풍습을 무명보살이 잇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내게 명절이 그렇게 큰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어릴 적 명절은 미지의 섬처럼 설레고 기분을 들뜨게 했으나 지금은 천하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이룩한 왕(?)처럼 한가롭고 평화롭게 하루 하루를 맞는다. 

사람들은 진귀한 보석에 직선과 곡선을 긋고, 노랗고 빨간 색을 칠하며, 구구한 사연을 새기면서, 고민하고 번민하지만 이제 나와 무관한 일이다.

사방으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이 자유롭게 오락가락 하는 방안에 누워서 천 년 잠을 널고 있다.

 

          覺牛 윤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