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시무상주시무등등주-1)

빛속으로 2008. 7. 3. 12:46

 

 

2007년 2월 24일

 

아침에 눈발이 날리더니 맑게 갠 화창한 오후다.

봄날처럼 따스하여 겨우내 집안에 움추리고 있던 화초들을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마당으로 옮겨놓으니 좋아서 방실방실 웃는듯 하다. 나는 화초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웃는다.

이월이 다 가기도 전에 남녁에선 꽃 소식이 이르게 솔솔 불어오며 봄빛이 송글송글 익어간다.

우리 집에는 아내와 아들과 내가 한가족을 이루고 오순도순 산다. 나는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가정을 갖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세상에는 농부도 있고 어부도 있으며 정치인도 있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으며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으며 의사 간호사도 있다.

사람마다 생활 방식이 다른데 의사는 훌륭하고 농부는 천하며 사장은 훌륭한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천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각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조합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며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다르다고 하여 어느 것이 좋고 나쁘며 어느 것이 천하고 거룩하다고 할 수는 없다.

천하고 고귀하며, 낮고 높고, 하찮고 거룩함이란 겉 모양이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왕도 거짓말하고 속이며 사리사욕을 탐하고 백성을 하찮게 생각하면 도리어 백성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으며, 행동이 선량하고 말이 진실하며 생각이 바르고 깨끗하면 존경을 받는다. 

부처님이 살아 계시던 때다.

집집마다 변소에서 똥오줌을 퍼 나르던 천민계급의 사람이 부처님이 오는 걸 보고는 차마 부처님과 마주치기를 꺼려서 다른 길로 돌아서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돌아서 가는 길 앞에 부처님이 또 나타났다.

그는 부처님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얼른 다른 골목으로 피해서 가는데 피해가는 곳마다 부처님이 앞에 나타나므로 이리저리 피하다가 그만 똥통을 엎질렀다.

똥통을 떨어뜨려 길에 오물이 쏟아지니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죄송하여 어쩔줄을 몰라 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너는 왜 나를 피하려고 했느냐?"

그는 울면서 대답했다.

"저는 비천한 천민이온데 왕족 출신이며 거룩한 성자인 부처님과 어찌 감히 마주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피한 것이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하여 똥통을 엎질러서 냄새가 진동하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인도에는 사성제도라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었다.

수행을 하는 바라문 계급과, 왕족같은 무사계급과,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평민계급과, 노예생활을 하는 천민계급의 네 계층이 있는데 바라문과 무사계급은 존경과 대우를 받지만 천민계급은 남의 집안 일을 해주며 사는 노예 신분이다.  

천민의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천민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평생을 변소 청소하거나 이발사나 뱀을 다루는 등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에 종사라며 천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갔다.

부처님은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천민이라 하는 것은 다만 사람들의 인식일 뿐이다. 그대가 비천한 것은 아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하며, 도둑질을 일삼고, 패륜을 저지르며, 분노하여 악담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하며 비천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천한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갸륵하고 고운 마음씨를 아시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았는데, 그의 아름답고 고운 마음씨는 천민에서 존경을 받는 수행자로 태어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