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무색성향미촉법-1)

빛속으로 2008. 1. 4. 12:14


< 나비와 자귀목 >

 

 

2007년 1월 14일

 

늦은 저녁. 술이 머리꼭지까지 오른 반갑잖은 손님이 찾아왔다. 벌겋게 달구어진 얼굴로 그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마자 말을 꺼냈다,

"좀 봐 줘!"

"뭘 봐 달라는 건데,,?" 

"뭐 X도 되는게 없어서 그래. 그냥 봐 줘."

그는 손을 불쑥 내민다. 손금을 봐 달라는 것 같다.

직장 다닐 때 책에서 읽은 대로 가끔 동료들의 손금을 재미로 봐주면 곧잘 맞춘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안한 지가 오래 되어 손금을 봐 준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손금을 보며 어쩌구 저쩌구 얘기하고 싶은 흥도 없어서 불쑥 내민 손을 잡고 가만히 있으려니,

"빨리 좀 봐 줘. 내가 나쁜 줄 다 아니까 나빠도 아뭇 소리 안할테니 XX, 그냥 봐 줘."

자신의 손금이 나쁜 줄 자신이 이미 다 짐작하고 있으니까 나쁜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해 달랬다.

뉘와 돌이 섞인 밥처럼 그의 말에는 반은 욕지껄이다.

평소 안면이 많은 그의 재촉에 손을 살며시 놓고,

"말을 부드럽게,, 상대방이 듣기에 나쁘지 않게 말을 해야 해. 사소한 것에도 부글대는 화를 참고, 분노가 솟아도 금방 폭발시키지 말고 참고, 그리고 태도를 공손하고 겸손히 해야 돼."

라고 말하니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또 봐 달라고 재촉했다.

이번엔 아예 얼굴을 내 민다.

"어때? 요즘 되는 게 도통 없구 괴로워 죽겠어. 너두 알지만 마누라가 집 나간지 벌써 10년이구. 씨발. "

이마에 주름을 깊게 잡으며 얼굴을 자세히 보이며 무어든 얘기해 달랬다.

"사주나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을 알고 있으니 (너가) 원하면 내가 소개해 줄께."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손 사례를 하며,

"돈도 없지만 니가 좀 봐 줘."

손금보고 줄 돈도 없지만 나 보고 봐 달라 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손금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야. 너에게 어려움이 찾아왔다면 어려움이 찾아 온 연유가 있는 것이니 손금을 탓하지 말고 손금을 좋게 바꿀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해."

",,,,,," 

"너가 생각하기에는 혈기에 무어든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한 주먹이면 상대를 제압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지.

예를 들어서 누가 너를 때리면 너는 그에게 화를 낼 것이고 만약 힘이 모자른다면 뒤로 돌아서서 욕하며 복수를 생각하겠지,

그처럼 상대가 비록 약하게 보이더라도 함부로 대하거나 깔보지 말아야 해. 함부로 때리고 욕하면 그는 반드시 너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를 생각하지.

남에게  원한을 쌓거나 나쁜 행위를 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 운명이 나빠지고 복을 쌓으면 좋은 운명으로 되지. 

그러므로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따스한 마음으로 대해 줘. 

남을 해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은 복을 쌓는 것이니, 언덕의 수례를 밀어주는 것도 복을 쌓는 것이고, 초행의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도 복을 쌓는 것이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도 복을 쌓는 것이고, 진실하고 부드러운 말도 복을 쌓는 것이야."

내 말에 그는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여기에 꼭꼭 입력을 시켜 달라고 했다.

그의 주문대로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첫째 부드럽고 고운 말을 쓰며, 둘째 공손하고 겸손하며, 세째 착하게 산다."

주문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그가 말했다.

"알았어요."

그는 갑자기 깍듯한 존댓말로 대답했다. 

그의 바꾸어진 태도와 말에,

"나에게 존칭을 쓰라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고운 말을 쓰라는 것이오."

라고 말하니,

"알았어요."

라고 공손히 대답했다.

그에게 �은 경전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옳바른 행동을 할 수 없으니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대신 집에서 이 책을 읽어요"

라고 채크해 주니 그는 책을 받아들고 좋아했다.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책도 주겠다고 하니 그는 싱글벙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허리를 숙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꾸벅 답례를 했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공손히 인사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