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10일
풍경소리가 뎅그렁 뎅그렁 그윽하게 방안까지 들려와서 유리창으로 삐꼼히 내다보니 바람이 지나가며 풍경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맑고 은은한 풍경소리가 산 속 솔바람처럼 청량한데 커다란 버스의 유리창에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니 문득 '아, 봄인가,,' 하는 생각이 인다. 봄의 내음이 물씬 느껴져서 달력을 보니 1월 한 겨울이다. 한 겨울 속에서 봄을 느끼곤 씁쓸히 미소 지으며 겨울 속 이른 봄 향기에 젖는다. 한 낮이 조금 지나서 친구가 찾아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내게 절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어느 절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알 수 없는 곳이야." 라고 대답하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어느 절에 다니느냐고 재차 묻었다. 어느 절에 다니는지 굳이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말해 주어도 넌 알 수 없는 곳이지." "말해 봐. 말하면 다 알지. 신흥사? 낙산사? 건봉사? 화암사? 보광사?,, " 근방의 절 이름을 쭉 나열하면서 어느 절에 다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녀석도 절에 다니는 모양으로 이름만 대면 다 알수 있다는 표정이다. 마음 안의 법당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으랴 생각되어서, "말해도 너는 알 수 없는 곳이지." 라고 반복해서 말하니 친구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디 안 가고 그냥 집에 가만히 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또 물었다. "나돌아 다니지 않고 종일 집에만 있는 거야?" 재차 물어서 그렇다고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대답하니 그는 이리저리 나를 흩어보고는 빙그레 미소하며, "이제 부처가 다 되었구나." 라고 말했다. 이상한 놈이다. 지가 무슨 부처를 안다고,, 난 그의 말에 그저 웃었다. 그는 별일 없이 이따금 찾아와서 차 한잔 마시고 간다. 근래에 친구를 만났던 이야기를 꺼내놓고는 또 바람처럼 너울너울 떠나갔다.
(본문을 이어서 쓴다)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을 풀이하면 수상행식이 없다는 것이다. 수(受)란 보고, 듣고, 느낌을 감지하는 작용이고, 상(想)이란 상상하거나 기획하는 생각의 작용이며, 행(行)이란 의지와 실행의 작용이고, 식(識)이란 기억하는 앎의 작용이니, 수상행식은 마음을 표현하며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이란 곧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이 큰 지혜며, 공을 모르고 말로만 공을 말한다면 이해일 뿐 깨달음(大覺)은 아니다. 마음을 깨닫는 방법으로 화두 참선법이 있다. 화두(話頭)란 말 이전의 말이란 의미인데 하나의 의심점을 꼭 붙잡고 정진하여 불멸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대중에게 연꽃을 들어보이나 아무도 그 뜻을 몰랐다. 그런데 마하 가섭만이 빙그레 미소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가섭을 불러서 자신의 의자를 길게 늘려서 앉히고. "가섭은 오랜 전생부터 나와 함께 수행한 도반이다. 이제 말로 다하지 못한 법을 가섭에게 전한다." 라고 말했다. 매우 괴이하지 않은가? 연꽃을 들어보이자 빙그레 미소를 지은 가섭에게 부처님께서 말로 다 하지 못한 법을 전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곰곰히 생각하며 일념으로 수행하여 깨닫는 것을 화두법이라 한다. 부처님을 곁에서 평생을 시봉하던 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무수히 들어서 기억하므로 모든 경전의 처음에 '나는 이렇게 들었다'의 주인공이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없었는데 그러나 부처님 사후에 경전을 결집할 당시에는 불법의 심오한 뜻을 깨닫지 못하여 칠엽굴의 경전 결집에 참석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못내 섭섭한 아난은 마하가섭에게, "부처님께서 따로 전한 법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마하가섭은 아난의 물음에, "눈앞의 찰간대를 무너뜨려라." 라고 말했다. 아난은 그 뜻이 무엇인지를 음식을 전폐하며 참구하다 피곤하여 누으려고 하는데 머리가 베개에 닿지 않는 순간 크게 깨달았다. 법을 깨닫고 칠엽굴로 찾아가서 비로소 경전 결집에 참석할 수 있었다. 각자 자기 눈 앞의 깃대를 무너뜨리면 생사가 없는 불법이다. 마조선사께서는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학인이 찾아와 물으면 '마음이 부처다' 라고 했으며, 조주선사는 찾아 온 손님에게 '차를 마시라' 하고, 임제선사는 법을 물으매 '악' 하고 고함을 지르고, 덕산선사는 법을 물으매 방망이로 때렸다. 말 이전의 말을 화두라 하는데 우리나라 조계종 수행법에 화두 참선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참선할 때에는 가부좌를 하는데 수행자의 앉는 자세다. 오른 쪽 발을 들어서 왼 쪽 허벅지 위에 얹어 놓고, 왼 쪽 발을 들어서 오른 쪽 허벅지 위에 올려 놓으며, 또 반대로 왼쪽 다리를 오른 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오른 쪽 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 놓는 방식이다. 가부좌는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은 하기가 어려우므로 한 쪽 다리만 올려놓는 반가부좌라든가 양반다리 등 편안한 자세를 취해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자세가 아니라 얼마나 또럿하게 깨어있느냐 이다. 그런데 생사를 초월하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다리가 조금 아프다고 가부좌를 못한다면 더 어려운 진리를 깨닫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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