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 28일. 킬라우에 화산의 용암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
2007년 1월 7일
마음의 눈을 뜨고 깨어나라,
차양막에 작은 풍경을 달아 놓았는데 뎅그렁 뎅그렁,, 바람에 그윽한 풍경소리가 잔잔히 울려퍼진다.
어제가 소한이다. 대한이 놀러왔다가 혼이 난다는 절기상 가장 춥다는 소한이다.
요즘 날씨가 포근했는데 차가운 바람이 풍경에 매달린 노곤한 물고기를 흔들어 깨운다. '뎅그렁' '뎅그렁' 도심 속을 울리는 풍경소리도 깊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구면의 객이 지나다가 들려서 우리 집 풍경소리를 듣고 시로 써서 자신의 블러그에 담았는데 그 글을 읽고 반응이 좋았다고 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산들거리는 바람에 실려서 퍼지는 풍경소리는 달빛에 흐르는 물결처럼 은은하고 깊은 산속처럼 고즈녁하다. 풍경소리에 이끌려 밖을 나섰는데 한낮 햇볕은 쌀쌀한 날씨에 묻혀 식은 재처럼 온기가 멀다.
거리에는 벌거벗은 가로수가 추위에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차가운 바람은 쓸 것 없는 황랑한 거리를 오락가락하며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다. 만날 수 없는 추억처럼 낮 초생달이 멀뚱한 하늘 아래에 서서 보는 빈듯한 썰렁한 거리가 슬프다. 세상이 왠지 슬프게 보인다.
슬퍼할 까닭이 없는데 슬프게 느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까닭 없는 슬픔은 정열을 잃은 태양과,, 나뭇가지의 가여린 떨림과,, 썰렁한 거리에 흩날리는 바람조각이다. 투명하게 적나라한 한겨울의 풍경이 빙하처럼 차갑게 마음에 담겨서 슬픈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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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글을 이어 쓴다)
부증불감(不增不減)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라는 말이다.
도대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라는 논리가 이론상 가능한가?
물이 찰랑찰랑한 용기에 어떤 물체를 넣으면 물은 흘러 넘친다. 물체가 크면 클수록 많이 넘치고 물체가 작으면 작을 수록 그 물체의 부피만큼 흘러서 넘친다. 또 빈 자루에 잡동사니를 넣으면 불룩해지고 자루에 들어있던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면 홀쭉하게 줄어든다.
그런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부증불감이라고 하니 일반적 사고로는 이해가 절대 불가능 하다.
반야심경의 부증불감(不增不減)은 인식의 헤아림이 아니다. 참다운 법은 본래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 드는 것도 아니다 하는 실상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태어나도 우주는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죽는다고 하여도 우주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진리의 실상은 텅 빈 공(空)이기 때문에 삼라 만상이 마구 생겨나도 팽창하지 않고 삼라만상이 일시에 다 소멸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또한 형상을 초월하므로 처음도 알 수 없고 그 끝을 볼 수가 없다. 먼 미래에 과학이 발전하여 설령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어서 찾아 다닐지라도 결코 처음과 끝을 만날 수 없다.
일체의 형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인연을 따라서 천변만화하는데, 본성(本性)은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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