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듬으며 명상일기

원수와 허수아비

빛속으로 2015. 7. 30. 12:25

 

 

 


  인류의 스승으로 사대성인 중의 한분인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라 함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니 어떻게 철천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 것이다.

  나에게 욕하고 주먹질한 것쯤이야 그럭저럭 참을 만하여 용서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내 부모를 죽이고 내 사랑하는 자식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면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철천지 원수인데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그리고 사랑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펄럭이지만 아랍인과 같은 형제임에도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며 싸워오고 있으면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미소하며 방심하는 사이에 비수를 꽂는 등 세상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을 벌이며 원한은 깊어만 간다.
  인류에게 희망이 되고 평안을 주며 이상향이 되어야 하건만 종교가 아집과 배타로 분쟁과 투쟁과 반목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음을 현자는 잘 알 것이다. 종교가 없는 것이 오히려 세상에 자유와 평화가 된다면 거룩함의 가면을 쓴 종교가 꼴불견일 뿐인데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모순이고 스스로의 배반이며 철천지원수는 영원히 사랑할 수 없는 것인가!


 

  원수를 사랑하라 함은 입을 열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매우 고차적인 주문인데 그 고차원적인 주문에 반야심경의 한 구절 중에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 해답이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흙, 물, 불, 바람으로 이루어진 상의 색(色)이 텅빈 허공(空)이고 텅 빈 허공(空)이 흙, 물, 불, 바람으로 이루어진 형상색(色)과 다름이 없다 것이다.

 

 

  겨울 들판에 허수아비가 홀로 서 있다고 하자. 그 허수아비를 누군가 칼로 베었다고 해서 허수아비를 벤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수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처럼 원수를 사랑하기 전에 미워하지 않으려면 원수가 허수아비가 되어야 하고 원한을 품은 사람도 함께 허수아비가 되어야 한다. 상대적인 두 사람이 모두 허수아비가 되면 원수가 없으니 물에 쓴 글자가 남아있지 않듯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조차 필요가 없다. 원수가 허수아비가 되고 공(空)이 되는 불가사의한 도리가 바로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다.

  나와 남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본성이 공하여 허수아비와 같다면 애초 원한이나 원수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와 원수가 다 허수아비인데 허수아비가 허수아비에게 증오가 일어날 수 없기에 법을 깨달은 성자에게 분노와 원수가 설 자리가 없다. 반야심경의 가르침은 사랑도 증오도 없는 깨끗한 세계의 성스러움이다. 

 

   ** 철천지 원수를 남김 없이 완벽하게 죽이고 제거하여 그 위에 영원한 평안의 꽃을 피우자! **

 

 

         <천상의 무지개> 수필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