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그리기 중에서

[스크랩] 통일 대불

빛속으로 2010. 7. 30. 14:13

 

 

      

             * 통일 대불 *

 

 속초에서 7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설악산 소공원이다. 소공원에는 군데군데 휴게소가 있고 권금성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으며 관상 수와 꽃나무가 조화롭게 잘 가꾸어져 있어 주위를 둘러보면서 걷노라면 금방 신흥사 경내로 들어서는 일주문에 다다른다. 일주문을 지나면 공터에 청동으로 조성한 거대한 석가모니불이 나타난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설악산에 머물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우뚝하고 원효대사를 비롯한 무수한 도인들의 숨결이 서린 바위굴인 계조암이 있는 곳으로부터 계곡을 따라 구비 구비 흐르는 맑고 깨끗한 시냇물 위에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는데 윗쪽으로 현대적 조형미를 갖춘 화강암으로 새로 조성한 다리가 놓여있다.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천불동 계곡을 지나서 신선이 노닐다 승천했다 하는 비선대와 와선대를 거쳐서 흐르는 큰 개울과 만나는 지점의 너른 공터에 청동으로 조성한 석가모니불이 계신데 나는 가끔씩 이곳에 찾아와서 참선을 하곤 한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염원을 모아서 건립하였다 하여 통일대불이라 부르기도 하며 당시로는 동양 최대의 청동 불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점안 식이 있던 날 난 아내와 함께 참석했었다. 지방에서는 흔치 않는 큰 행사여서 인지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안면이 있는 분도 더러 만나고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행사에 오신 분들도 많았는데 멀리서 오신 뜻을 보면 불심이 깊은가 보았다.
 청동 석가모니 좌불은 어느 미술대학교 교수님이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 하는 경과 보고가 있었는데 그분은 불상을 만드는 동안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를 나타내기 위해 무척 애쓰셨다 한다. 싸울 일이 있어도 피하고, 화가 나도 참으며, 오로지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만을 생각하며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부처님의 그윽한 미소가 신비롭다.
 부처님의 미소는 언제 보아도 좋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의 미소만큼 그윽하고 신비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미소란 어떤 형상이나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생노병사가 없는 깨끗하고 밝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내면 세계의 표현이다.
 만약 모습은 부처인데 고뇌로 갈등하거나 괴로워하며 심술이 나 있다면 모양만 부처일 뿐 바른 불상은 아니라고 해야할 것이다. 부처란 모든 번뇌가 소멸되고 괴로움도 근심도 없으며 늙고 병들고 죽음이 없으니 다만 그윽하며 평화롭고 신비로운 미소가 가득할 뿐인데 괴롭고 고통스러워하는 형상으로 조성했다 하면 집착과 번뇌망상이 있는 내면의 표출이기에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라 할 수는 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아픔과 고뇌를 껴안고 보듬어 평안을 줄 것 같은 통일대불 앞에 가끔씩 찾아와 앉아 있노라면 고요와 평화가 가득 흐른다.
 분열과 갈등이 없고 언제나 안온하며 지극한 평화로움 이것이 진정한 통일대불의 뜻일 것이다.

 통일대불의 점안 식이 있던 시기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대통령 입후보의 부인들이 참석했고 각 정당을 대표하는 중진 인사들과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도지사 국회의원 시장 등 정 관계의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주인 격인 불교계에서도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과 원로 스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스님과 거사 님과 보살 님들이 참석하여 작은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큰 행사였다.
 각 정당을 대표하여 참석한 사람들의 화려한 어휘력과 유창한 웅변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법력으로 남북 통일이 하루 빨리 이룩되기를 기원하는 축사의 내용에 섞어서 자기네 정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말을 은근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삽입했다.
 또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원로 스님들의 인사 말씀과 축사와 법어가 있었는데 정당을 대표하는 사람이나 정치가와 관직에 있는 분들의 연설보다는 나는 스님들의 말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TV에 자주 등장하는 스님들은 점안 식에 무슨 말씀을 할까 궁금해서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도록 허공을 부실만한 우렁찬 사자후는 듣질 못했다. 대자대비의 부처님 법이 널리 퍼지기를 기원하며 부처님의 법력으로 남북 통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다른 거사 님들의 축사내용과 특별히 다르지 않는 내용이었다.
 내가 참석하였을 때는 막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는데 혹시 도착하기 전에 어떤 특별한 말씀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자리를 지키는 내내 연단에서 말씀하시는 분들의 한마다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표정이나 몸짓에도 유의하여 보고 들었지만 말 밖의 말은 보거나 듣질 못했다.
 통일에 대하여 일반 사람에게 말하라고 하면 남한과 북한이 국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것을 통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통일대불의 점안 식에 즈음한 남북 간의 통일을 운운함은 당연한 축사일 수 있겠지만 수행하는 선지식이라고 한다면 한반도의 허리를 잇는 남한과 북한의 통일만을 거론함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을 갈라놓은 휴전선은 동족끼리 피를 흘린 한이 서린 곳이다. 그리움이 있고 미움이 있고 사랑이 있고 고통이 있으며 원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사연이 칡넝쿨처럼 얽힌 선이다.
남한과 북한을 갈라놓고 있는 선만 제거한다고 통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아닐 것이다. 어렵게 선을 허물고 통일이 되었다고 한들 서로 미워하며 원망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통일이 아니라 또 다른 혼란이며 분단이다.
 진정한 통일이란 남도 없고, 북도 없고, 동도 없고, 서도 없으며, 미움도 없고, 애증도 없으며, 괴로움도 슬픔도 원망도 없고,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고, 가깝고 먼 것도 없는, 모든 대립된 감정이 사라진 평화롭고 안온함이 진정한 통일의 의미일 것이다.
 분열과 갈등과 주의주장과 시비선악이 사라진 적멸보궁의 부처님 세계는 미묘하여 일반 사람들은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알기 쉬운 말로 얘기해야할 것이지만 한 분쯤은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지라도 거대한 청동 대불을 허공에 번쩍 들었다 놓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온화한 부처님의 미소에 깊이 빠져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주최측에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었는데 아내가 내 도시락까지 가지고 왔다.
 날씨가 쌀쌀하여서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쪽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 도시락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였는데 우리도 삼삼오오 사람들 틈에서 도시락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으니 마치 소풍을 나온 듯 즐거웠다.
 그 후로 일요일이면 이따금씩 찾아와 통일대불 앞에서 참선을 하곤 하는데 찾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는 것을 본다.
 양초도 공양하고, 향도 공양하고, 쌀도 공양하고, 돈도 공양하고, 절을 하며 중얼중얼 소원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가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따라서 절을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천진스럽고 귀여웠다.
 그런데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면 관광객이 많고 참배 객도 많은 큰절의 법당에 책상을 놓고 기도비를 받는 것을 보는데 큰 사찰이라 살림도 어렵지 않을텐데 지나칠 정도로 기도를 권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청정한 도량이 돈을 탐내는 것 같아 결코 예쁘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적 간절한 뜻으로 절을 찾아갔는데 스님은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하던 어느 비구니 스님의 얘기가 영상처럼 떠오르며 절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른 종교인들도 많을 것인데 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절의 유래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것이 더 훌륭하고 거룩한 불사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오지랍도 넓다. 내 잘못은 모르고 남 잘못은 어찌 잘도 보고 아는지,,)
 부처님께 절하면서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며 기도하는 사람, 가정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사람, 병이 나아 건강하기를 발원하는 사람, 사업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등 소원은 많고 다양한데 부처님은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지으신다.
 부처님이 앉아 계신 곳의 앞은 넓은 도로라서 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하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부처님을 미워하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묵묵히 말씀이 없고 자비로운 미소만 은은하다.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말하고 자기의 주장을 목에 핏대를 세워 열변을 토하며 떠들지만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 같다.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다.
 유마거사가 병을 칭하고 자리에 누우니 국왕을 비롯한 대신과 장자와 백성들까지 병문안을 왔다. 그런데 부처님은 오지 않으므로 왜 병문안을 오지 않는 것인가 생각을 하니 부처님께서 알고 문수보살에게 병문안을 가도록 하므로 많은 보살들이 함께 유마의 병문안을 왔다.
 병이 생긴 연유와 병의 소멸에 대한 문수와 유마의 문답이 끝난 후 
유마거사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물었다.
 "불이(不二)의 문에 든다고 하는데 불이의 문은 무슨 뜻입니까?" 
 보살들은 유마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변했다.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을 둘이 없는 곳에 들어간다 합니다."
 "나와 남의 분별이 없음이 불이의 문에 들어간다 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음이 불이라고 합니다."
 "번뇌와 해탈이 다르지 않고 같은 것이 불이의 법입니다."
 "윤회와 열반이 둘인 줄 알지만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는 것입니다."
 "색(色)과 공(空)이 다르지 않는 것을 불이의 문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문수보살에게 불이의 문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대들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도 들어가는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말로써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글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생각 이전의 자리 그것이 바로 불이의 문(不二門)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변하며 문수보살은 아무 말이 없는 유마거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거사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 ,,,,,,,,,,,,,,,,,,,,,,,,"
 유마거사는 입을 꾹 다문 채 묵묵 부답이었고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문수보살은 유마의 침묵에 대하여
 "문자도 없고 말도 없고 마음의 움직임도 없는 참으로 훌륭한 불이의 문에 들어가는 깊은 도리입니다. " 
 라고 찬탄했다.
 마음이 비어 고요하고 깨끗하면 동서남북의 분단이 없고 하늘과 땅의 경계선이 없는 완전한 통일을 이루니 통일을 완성한 우주의 주인은 언제나 평온하고 신비로운 미소가 흐른다.

 


     우주그리기 중에서,, 覺牛 윤철근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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