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그리기 중에서

[스크랩] 보물과 보물단지

빛속으로 2009. 9. 5. 12:17

 


 

 

     * 보물과 보물단지 *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귀중한 보물처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조금만 아파도 걱정하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사 먹으며 몸에 좋다하는 보양 식은 가리지 않고 구해서 먹는다.

 한때는 굼벵이가 몸에 좋다고 하니까 초가지붕 속에 있는 굼벵이를 구하기 위해 스레트나 기와로 지붕을 바꾸어 주고 통째로 초가지붕을 걷어 가는 바람에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 초가지붕은 지금 볼 수가 없다. 징그럽게 생각 되도 몸에 좋다고 하니까 지붕 속까지 들춰서 잡아먹었다.
 언젠가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커다란 주사기를 찔러서 웅담을 훔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었다. 고통스러워하며 눈만 껌벅거리는 곰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웠는데 그 고통이 마치 내 고통처럼 느껴지고 그런 짓을 하는 자에게 분노가 일었다. 그 프로를 본 사람은 아마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곰이 그를 붙잡아서 가두고는 산 사람의 피가 좋다고 심장에 호수를 꼽아서 끼니때마다 뽑아서 먹는다면 어떨까. 그래도 좋다고 할까?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지만,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바꾸어 생각해 보고 행동해야 그래도 허물을 줄일 수 있다.
 죽을병이 들어서 살아있는 곰의 쓸개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지, 정력이 약해서 보충하기 위해 그런 짓을 하는지, 혹은 더 오래 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살아있는 곰의 쓸개를 도둑질하여 먹고 무슨 이득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 때는 멧돼지, 노루, 너구리, 오소리, 뱀, 등이 몸에 좋다 하니까 닥치는 대로 마구 잡아 먹어치우는 통에 한국에서는 바닥이 났는지 동남아에 관광을 가서 야생 동물을 잡아먹고 캐나다까지 날아가서 들판에 평화롭게 뛰어 노는 사슴을 잡아먹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호해야할 희귀 동물들까지 마구 먹어치우는 바람에 소문이 나서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한국인 전체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왜 먹는가?

 먹는다는 것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배가 고프지 않도록 먹고 힘을 얻어서 활동할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적당히 먹는 것이다.
 육지에 사는 동물들이 제 몸을 노릇하게 구워서 올리고,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제 몸을 삶아서 올리고, 상추 배추 쑥갓 산나물이 깨끗한 물에 씻어서 바치는데 정성스런 음식물을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히 먹어야 한다.
 날마다 때를 거르지 않고 올리는 거룩한 공양 물을 받고서 감사함을 모르고 맛을 투정한다면 예의가 아니며, 작은 정성일지라도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고 말과 행동이 맑고 착하며 진실하다면 이것은 보약이 된다. 그러므로 외국까지 가서 먹어야할 특별한 보양 식은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힘들게 번 귀한 돈을 써가면서 외국까지 가서 희귀 동물을 잡아먹는데 그것이 얼마나 몸에 유익한지 혹 보약이 아니고 독약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며 고귀한 것이라서 풀 한 포기도 함부로 꺾지 말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동물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를 쓰고 쫓아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생명의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를 외면하고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죽여서 제 몸보신하겠다고 먹는데 몸보신은 고사하고 독약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입장을 바꾸어서 죽어 가는 동물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라. 자기를 잡아먹는 사람에게 '아이쿠, 죽여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생각하겠는가? '요놈 어디 두고 보자! 네 놈이 나를 잡아먹어? 반드시 너를 죽여서 복수하고 말 것이다!' 라고 원한을 품을 것 아닌가.
 그렇게 죽은 동물들이 알게 모르게 원귀가 되어 그대를 죽이겠다고 밤이나 낮이나 쫓아다니며 노릴 것이다. 그러니 그대의 운명은 순전히 그들 손에 달린 것이다.

 가끔씩 만나는 몇 분이 있다. 한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와 곳곳에 호수가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 낚시를 즐긴다.
 어떤 사람은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의 한가한 시간에 가고 어떤 사람은 틈을 내서 밤에도 낚시를 떠난다. 낚시가 취미 생활인지 본래의 생업인지 잘 분간이 안가는 사람도 있는데 몇 사람만 만나면 의례 낚시 얘기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자신은 언제 어디서 무슨 고기를 잡았고 누구는 어디에 가서 무슨 고기를 얼마큼 잡았다는 등의 꾼들의 동향이 일목으로 나열되고 정보가 교환되며 낚시 계획이 세워진다.
 그들의 낚시하는 기술은 박사 급 수준이라서 모르는 게 없다. 물고기 종류별로 사는 곳과 습성과 좋아하는 먹이를 잘 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침, 점심, 저녁, 밤, 계절 별로 시간에 따라서 낚시하는 장소와 방법과 기술이 있고 지형과 일기의 변화에 따른 낚시하는 법이 치밀하고 세밀하여 고기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느낀다.
 나도 전에는 이따금씩 그들을 따라서 낚시를 다녔는데 똑같이 낚시를 해도 다른 사람에 비해 잘 잡지도 못했지만 요즘은 아예 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에 끼지 않고 그저 옆에서 묵묵히 듣는 편인데 만날 때마다 낚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으므로 하루는 틈새를 내어 말했다.
 "낚시는 왜 다니는 겁니까? "
 "시간도 잘 가고 고기가 잡혔을 때 짜릿한 손맛은 일품이야. 아마 그 맛 때문에 낚시를 다닌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 "
 가깝게 지내는 선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직 그런 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의도를 궁금해하는 선배에게 말했다.
 "다른 취미를 살린다면 시간도 유용하게 보낼 수 있고 또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한 생명을 끊는 낚시에 취미를 붙입니까? 사람들은 취미로 낚시를 할 진 몰라도 그 재미에 고기는 소중하고 귀중한 생명을 잃습니다.
 그 고기도 천수를 다하여 오래 살고 싶은데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잡힐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아니고 낚시질하는 사람의 재미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원통할 것입니까. 낚시에 걸려 죽는 물고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으셨는지요? "
 "힘센 동물은 약한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고, 또 물고기로 태어났으니 낚시 바늘에 걸려 죽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데 뭘 그것까지 골치 아프게 생각해."
라고 선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물론 일리 있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낚시하고 사냥하는 재미로 인하여 실생활에서 괴롭고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숙고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낚시와 사냥을 매우 즐긴 어느 분의 얘기를 꺼내어 들려주었다. 
 "토끼며 노루며 멧돼지며 산짐승이란 짐승은 못 잡는 것이 없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꿩이라 해도 신기하게도 잘 잡을 뿐만 아니라 낚시도 아주 좋아해서 틈만 나면 낚시를 다니는 분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분에게 차츰 안 좋은 불행한 일이 발생했어요. 평생 동안 한 번을 겪어도 충격적인 사건을 연이어 당하자 매우 괴로워하며 어느 날 나에게 말했어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하며 몹시 괴로워 눈물까지 글썽거렸지요. 
 '사냥을 그만 두세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듯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었지요.
 '사람들이 심심풀이 재미로 사냥을 할 진 몰라도 그 재미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빼앗지요. 올가미에 걸려서 꼼짝 못하고 죽어 가는 토끼나 노루나,,,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을 죽인 사람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겠습니까.
 기회가 되면 반드시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며 자기가 당한 이상의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려 할 것입니다. 잡혀서 죽은 그들에게는 가족이 있으며 가족들의 고통과 괴로움 또한 크니 그들도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며 원수를 갚으려할 것입니다.
 짐승들은 집착심이 강하기 때문에 분노도 원한도 큽니다. 그들은 언제나 복수할 기회를 노릴 것이니 재미로 사냥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소원대로 잘 될 수가 있겠어요? 더구나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한 사람은 그만큼 많은 원한을 짊어지고 사는데 어찌 행복하고 단란한 삶을 바라나요?

 반드시 때가 이르면 하늘에 사무치는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업이 지중할수록 더 큰 어려움을 빈번하게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사냥하는 것을 그만 두세요.'
 라고 나는 냉정하리 만큼 또박또박 말했지요.
 그분은 오래 침묵했는데 어느 날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제는 사냥을 다니지 않는다구 조용히 말했지요. 난 그 말을 들으며 참으로 고마워했어요."
 함께 있던 일행들은 나의 이야기에 아무도 말이 없었고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살면서 불현듯 크고 작은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일이 예상치 못한 뜻밖의 큰 사건일 때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내 이야기에 매우 놀라고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떠올리면서 침묵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힘들게 일하고 쉬는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귀한 시간을 소비하게 위해 낚시나 사냥을 하면서 미래를 어둡게 만들지 말고 마음의 양식을 위하여 책을 보거나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고요하게 명상하는 것은 천상으로 가는 사다리를 허공에 하나 둘,, 놓아 가는 성스러운 작업이다. 그렇게 고귀한 작업을 팽개치고 사냥이나 낚시로 나쁜 업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니 참으로 딱하지 않은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태종11년 2월에 일본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조정에 보내왔다.
 왕실에서는 거대한 코끼리를 키울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말을 키우는 곳에서 기르게 했는데 코끼리를 본 관리가 코끼리를 보고 왜 이리 못생겼느냐고 야유를 하며 가래침을 뱉었다. 그러자 코끼리가 화가 나서 긴 코로 그를 감아서 땅에 팽개치고는 발로 밟아서 죽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야기니 틀림없을 것이다. 조정의 관리는 거들먹거리며 자기는 고상하고 코끼리는 못생기고 추하다며 침을 탁! 뱉었는데 천한 코끼리가 그를 코로 감아서 땅에 팽개치고 발로 밟아 죽였으니 누가 더 천하고 누가 더 고상한가.
 천박하고 고상함은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만약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며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면 코끼리가 화를 내며 그를 밟아서 죽였겠는가. 욕을 하고 침을 뱉은 결과로 그는 죽었고 코끼리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관이 높은 나리도 추하다고 무시한 코끼리에게 밟혀 죽임을 당했는데 평민이 어찌 동물의 생명을 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권모술수와 힘이 약하다고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 무릇 모든 생명은 평등하게 고귀한 것으로 살생은 나쁜 인과를 낳으니 살생한 과보로 재앙이 닥쳤을 때는 울부짖으면서 죄 없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 하늘에다 고함치며 주먹질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스승들은 나쁜 업을 짓지 말라고 간절히 부탁했거늘 그 말은 콧등으로 듣고 살생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며, 악행을 밥먹듯 하고는 그것에 대한 과보가 닥치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악을 쓰며 항의를 하니 중생이란 참으로 어리석다. 어리석은 그에게 하늘은 무어라고 말해 주어야 할까.  

 아는 자는 하늘처럼 고요하고 평온하나 모르는 자는 분노하며 시끄럽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비롯한 일부 철학자와 지식인은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이 근원적이라고 하는 유물론을 주장했다. 유물론은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 모태가 되었는데 그래서 공산주의는 정신적인 면과 종교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하다며 그와 같이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유물론은 모호하여 언듯 그렇 듯도 하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의 부류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며 정신이 근본이라고 유심론을 주장하므로 유물론과 서로 충돌한다. 그러면 과연 마음이 근본인지 육체가 근본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먼저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지켜 보라.
 내가 손을 움직이려는 생각이 없으면 손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는다. 손은 나무토막처럼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다. 내가 움직이려는 마음을 내어야 비로소 손은 이리 저리 움직이니 높이 올리고 아래로 내리며 마음을 따라서 자유롭게 움직이게 된다.

 또 발을 가만히 살펴 보라.
 내가 움직이려는 뜻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발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려는 뜻을 내어야 비로소 한 발 한 발 걷고 뛰고 멈추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방바닥에 눕혀 놓고 살펴 보라.
 아무 생각이 없이 무심하게 있으면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다. 움직이려는 뜻을 내야 비로소 몸을 꿈틀거리며 움직일 수가 있지 않은가!
 마음이 없다면 몸이라는 것은 나무나 바위와 같고 죽은 시체와 다를 게 없다. 몸은 마음이 뜻을 내어야 비로소 오고 가고 앉고 눕고 서고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주인이며 몸은 마음을 담고 있는 보물단지로써 보물은 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주장하였던 공산주의의 이론의 모태가 된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이 근본적이라고 주장한 유물론은 스스로의 몸을 가지고 살펴보았듯이 명백한 오류다.
 마음이 몸의 주인이며 몸뚱이를 마음이 움직이니 그러므로 유물론의 공산주의 사상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상누각과 같다. 그런 연유로 공산주의가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점차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이 몸의 주인이며 정신이 근본인 것을 명확하게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물인 마음은 보살필 생각을 않고 오히려 보물단지인 몸을 보물처럼 생각하여 아끼며 돌본다. 몸에 좋다하면 쥐똥이든 코끼리 오줌이든 살생이 독약인 줄도 모르고 어디든 달려가며 몸을 위해 노심초사 애쓴다.
 길(吉) 흉(凶) 화(禍) 복(福)은 저절로 아무렇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뿌린 씨앗을 따라서 자라나는 것이니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감자를 심으면 감자를 수확하듯이 착한 씨앗을 뿌리면 복을 받고 악의 씨앗을 심으면 재앙을 수확하게 되는 인과는 조금도 착오가 없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좋은 훌륭한 씨앗을 마음 밭에 심고 정성으로 가꿔야 한다.
 그런데도 귀한 보물은 안중에 없고 어리석게도 그릇인 몸을 열심히 돌보고 가꾸니 오래 보존하는 법, 보수해야 할 시기, 낡은 부분을 교체하는 방법, 어떤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기술은 날로 발전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특이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몸을 돌보고 가꾼다 해도 몸은 유한하여 반드시 죽는다. 역사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이 없음이 명백한 입증이니 그 까닭은 몸뚱이가 보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스스로 천하 으뜸의 보물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귀한 보물은 돌볼 생각을 않고 보물단지에 정성을 쏟으니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이 참 보물임을 명심하여 우주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인 마음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돌보며 가꿔야한다.
 무덤 속에서 쿨쿨 잠을 자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글을 읽고는 관 안에서 자신의 손을 들어보고 발을 들어보고 몸을 움직이면서 그들이 주장하였던 유물론이 틀리고 마음이 근본임을 번쩍 깨달았을 것이다,
 지상의 낙원을 꿈꾸었던 유물론이 잘못임을 알고는 제자로 받아주기를 간청하면서 새로운 국토를 건설하기를 소원한다면 우주의 광대한 땅에 근심 걱정 괴로움이 없고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세계를 눈앞에서 보여주리니 - 마음의 고향이다. 

 

 

   우주그리기 중에서,, 윤철근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글쓴이 : 빛속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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