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내지-1)

빛속으로 2008. 2. 16. 12:20

         < 불국사 다보탑(국보20호) >

 

 
2007년 1월 21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에는 탄생 설화가 있다,
신라시대 경주의 모량리에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하여 마치 성과 같다고 하여 대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머슴을 살며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갔는데 하루는 그가 머슴으로 살고 있는 집에 점개라는 스님이 시주를 나왔다.
스님이 문앞에서 목탁을 치자 주인인 복안이 나왔다. 점개는 복안에게 시주를 나왔다고 말하며 권선문을 들려 주었다.
"부처님께 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를 얻고 안락하게 장수합니다."
주인인 복안은 점개스님의 권선문을 듣고는 선듯 베 50필을 시주하였다.
그 광경을 대성이가 유심히 보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우리가 어렵게 사는 것은 전생에 보시를 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보시를 하지 않으면 내생에는 더욱 어렵고 가난하게 살 것입니다. 그러니 고용살이로 받아 장만한 작은 밭때기라도 보시를 하여 훗날의 과보를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했는데 아들의 말에 어머니도 쾌히 승락하였다. 
대성은 다음 날 점개스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보잘 것 없지만 그들의 유일한 전 재산인 밭을 보시하였다. 그런데 밭을 보시한 얼마 뒤에 대성이가 갑자기 죽었다.
보시를 하였음에도 부귀와 장수는 고사하고 외동아들이 급사를 하니 어머니는 비탄에 젖어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하였다.
대성이가 죽은 날 밤이었다.
나라의 재상인 김문량의 집에 '모량리 대성이가 너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 란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김문량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니 과연 모량리에 대성이가 그 날 밤에 죽은 것을 알았다.
재상의 부인은 대성이가 죽은 날 임신하여 열달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런데 아이가 왼손을 꼭 쥐고 도무지 펴질 않았다. 7일 만에 손을 펴는데 손바닥에는 '대성'이라 글자가 써 있었다. 
김문량은 아이의 이름을 대성이라 짖고 아이의 전생의 어머니를 집에 모셔와서 함께 살게 했다.
대성은 전생과 현생의 두 어머니의 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대성은 크면서 사냥을 무척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커다란 곰을 활로 쏘아 잡았다. 그는 곰을 끌고 산 아래의 마을로 내려와서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그가 잡은 커다란 곰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서 말했다. 
"너가 나를 잡았는냐? 이 괘씸한 놈아! 이제 내가 너를 잡아 먹겠다!"
하고 덤벼들므로 대성은 두려워서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럼 너는 나를 위해 절을 지어서 극락왕생을 빌어줄 수 있겠느냐?"
"네, 네, 제가 곰님을 위하여 절을 지어 극락왕생을 빌어드리겠습니다."
하고 굳게 맹세를 하고 깨어났는데 식은 땀으로 온몸을 적셨다.
대성은 너무 놀라서 그 후로는 사냥을 금하고 곰을 잡은 자리에 곰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장수사라는 절을 지어주었다.
장수사를 짓고 나니 마음이 신비롭고 환희심이 들어서 그는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창건했다.
부귀, 빈천, 길흉, 화복은 부처나 신이 마음대로 이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저 사람에게는 화를 죽며 임의적으로 길흉화복을 던져 주어서 재수가 좋은 사람은 복을 받고 재수가 꽝인 사람은 화를 받는 것이 아니다.
나쁜 행위는 반드시 재앙으로 돌아오고 좋은 행위는 반드시 부귀영화를 받는 것이니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인과응보는 조금도 착오가 없다.
특히 선행을 해도 댓가를 바라지 않는 무주상보시는 허공처럼 그 공덕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