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무노사역무노사진-1)

빛속으로 2008. 2. 26. 12:26

 

<법주사쌍사자석등(국보5호) -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 소재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조각상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 되고 매우 뛰어난 특수한 형태>


 

2007년 1월 23일

 

번쩍! 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르쾅! 쾅! 천둥이 울렸다.

폭죽놀이처럼 번개 불이 번쩍거리고 천둥소리는 고막을 찢으니 깜짝 깜짝 놀랐다. 그렇게 요란하게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은 난생 처음이였다.

옆 집에 앞 집에 벼락이 마구 떨어졌다. 번개를 맞아서 집들이 무너지고 부셔지며 불이 활활 타올랐다. 우박이 내리듯이 번개가 사방 천지에서 번쩍 거리고 벼락이 떨어지면서 지진이 난 것처럼 우리 집도 마구 흔들렸다.

우르릉 거리며 대지가 파도처럼 진동했다. 두려움과 공포의 극치였는데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건 꿈이였다.

그것은 어젯밤 꿈이였으나 나는 꿈속에서 현실과 조금도 다름없이 느꼈다.

언제 벼락이 우리 집을 내리쳐서 내 머리 위에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벼락에 맞아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나는 방에 앉아 있었다.

번쩍! 우르릉~ 꽝!꽝! 쉴 사이 없이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금방이라도 벼락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이곳 저곳으로 숨어 다니거나 당황하여 이불을 뒤집어 쓰며 숨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꿈에서 깨어 나를 돌아 보았다.

나의 몸이란 음식을 먹으므로 유지되는 인연으로 잠시 이루어졌을 뿐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나'라는 생각과 '나의 몸'에 대한 애착의 덧에서 그만큼 벗어난 듯하다.

젊은 날 나는 늙어서 죽는 꿈을 꾸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공포와 두려움과 슬픔과 애통함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후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슬프고 두려웠다. 죽음을 초월하는 법은 없는 것인지 영원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어놓고 정진하던 어느 날이었다.

신문에 최인호씨가 쓴 길 없는 길이 연재되고 있었는데 오후의 햇실을 따라서 무심코 글을 읽어 내려갔다.
경허스님은 어렸을 적 스승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마지막 길이나 배웅해드리겠다며 등에 걸망을 매고 일주문을 나서 성큼성큼 걸음을 재촉하던 어느 날이었다.

이미 날이 저물어서 요기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갈 양으로 마을로 찾아 드는데 낮선 손님을 맞는 요란한 개 짖는 소리도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을 괴이 생각하며 기웃거리며 사람을 불러 물어보니 무서운 역병이 온 동네를 휩쓸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이미 오래라 했다. 
산 사람은 모두 떠나고 병든 자와 시체와 죽음의 병이 점령한 마을의 한가운데서 태어나서 그는 처음으로 죽음과 단둘이 대면하는데 정신은 아뜩하고 발걸음은 굳어 떼어지지 않았다. 

두려움과 공포!!

전국에서 찾아온 학인들 앞에서 병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죽음이 없다고, 쩌렁쩌렁 울리던 기상과 기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도인처럼 말할 땐 막힘이 없었는데 막상 죽음을 만나고 보니 깜깜 절벽이고 돌림병으로 죽은 시체 바로 옆에서 두려움에 떨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한낮 문자이고 이해일 뿐 생사(生死)의 문을 진실로 통과하지 못했음을 절감했다.

그는 옛 스승을 찾아가던 일을 취소하고 동학사로 되돌아와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꽉 걸어 잠그고는 모를 것 없을 것 같던 일천 칠백 공안 가운데서 유독 찜찜하던 <노새의 일이 가기 전에 나귀의 일이 왔네> 라는 불멸의 문을 여는 화두를 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가부좌 틀고 밤과 낮을 꼼짝도 하지 않으니 마치 태산과 같았다. 

턱밑에 날카로운 송곳을 받쳐들고 있어서 잠깐만이라도 졸면 송곳은 사정없이 얼굴을 푹푹 찔러서 선혈은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머리카락은 자라서 긴데 피가 흘러서 얼굴은 온통 굳은 핏자국 범벅이라 나찰 귀신도 놀라서 도망갈 지경이었다.  

태산처럼 털끝 만큼도 마음에 흐트러짐 없이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공부를 하니 수마(졸음과 잠)도 항복하여 더 이상 졸리지 않고 화두는 여일하고 의식은 또렷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명스님이 탁발하던 중 이거사댁에 들렸는데 이거사는 스님에게 시주를 하면서 말했다.
 "스님이 되어서 공부를 않으면 죽어서 소가 된다지요?" 
 "시주물을 받은 지중한 업으로
소가 된다고 합니다."
이거사의 물음에 학명스님이 대답하니,
 "사문이 그렇게 말하면 됩니까,"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 뚫을 구멍이 없습니다 라고 답하셔야지요." 
죽어서 소로 태어나더라도 코 뚫을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뜻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절로 돌아와 대중에게 물었으나 역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혹시 경허스님은 알지 모른다는 의견이 있어서 굳게 잠겨 있는 경허스님의 방문 앞에서 자초지종을 읖조려 이야기하고.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 뚫을 구멍이 없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이 치듯 번쩍! 했다.

열반의 세계를 깨달으니 경허는 굳게 잠겼던 문을 박차고 걸어 나왔다.

그런데 <죽어서 소로 태어나더라도 코를 꿸 구멍이 없어야 한다>라는 말에 경허선사가 문득 깨닫고 생사를 해탈하는 장면의 글을 읽으면서 그 순간 나도 코를 꿸 곳 없는 소를 보았다.

일체가 텅 비어 죽음이 없는 열반을 체득하여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생사(生死)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그 후로 그저 배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래서 천둥과 번개가 쏟아지는 한가운데서도 그럭저럭 담담할 수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