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일기

반야심경일기(불생불멸-2)

빛속으로 2007. 11. 5. 13:31

 

 

2007년 1월 3일

 

죽음이 없는 불멸을 찾기 위하여 반야심경을 화두로 들고서 무척이나 열심히 참구하던 때다.

반야심경을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염하는 것이 화두라기 보다는 주력과 같았다는 지금의 생각이지만 촌시도 끊어지지 않도록 발등에 불이 떨어져 끄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이어가던 어느날이다.

반야심경이 뚝 끊어지고 나는 산등성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밤마다 화두가 끊어지고 나는 산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현상이였다.

어느 날은 황량한 길을 걷기도 하고 어느 날은 기암과 괴목이 어울린 아름다운 선경이였으며 어느 날은 절벽에서 뚝 떨어져 계곡의 깊은 폭포 속으로 끝없이 빠져들기도 했다.

여러 가지 현상들을 체험하며 반야심경 안에서 나타나던 오솔길을 따라 한가롭게 걷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거대한 산이 달려왔다. 커다란 산이 우르릉 거리며 달려들므로 깜짝 놀라서 혼미백산 도망쳐 나왔다. 내가 뒤로 물러나자 산은 아무 일 없었던듯 제자리로 돌아가 태연히 서 있었다.

산이 움직인다는 것도 해괴하지만 내가 앞으로 걸어가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듯 달려들었다. 살금살금 발을 옮겨도, 납작 엎드려서 기어가도, 눈이 달린 듯이 양쪽에서 달려드는 태산의 위용에 겁을 먹고 허구한 날마다 도망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죽기를 각오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천지를 울리면서 덤벼드는 거대한 산에 깔려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만에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거대한 산이 좌우에서 달려와 부딪쳐서 난 오징어처럼 끼여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안간힘을 쓰니 산은 조금씩 밀려났고 그래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 날도 참선 중에 화두가 끊어지며 나는 어제 그곳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는데 굉음을 울리며 산은 달려왔다. 그러나 한 번 통과한 경험으로 양쪽에서 덤벼드는 산을 하늘의 용사처럼 팔을 벌려서 힘껏 미니 산은 더 다가서지 못했다.

그 길을 여유롭게 통과할 즈음 그러한 현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순조롭게 수행해 가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걷고 있는 외길에 커다란 둥근 톱이 내 키만큼 층층으로 우뚝 서서 윙윙 돌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나무도 댕강댕강 자르는 커다란 톱은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거리고 히죽거리며 울부짖었다. 금방이라도 갈갈이 찢어버릴 태세라 보는 순간 오금은 얼어붙어서 굳고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쇠도 절단할 것같은 톱날의 기세는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살이 찢겨서 피가 튈 것만 같은 살기에 완전히 질렸다.

난 날마다 톱날 앞에서 두려움으로 돌아서야 했다. 오늘은 기어이 통과하리라 결심을 하지만 허공을 찢는 금속성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번번히 돌아서야 했다.

죽음이 없는 불멸을 찾아나선 길에서 지나가면 영락없이 죽고야 마는 이율 배반적 상황에서 허구한 날을 서성이다가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늙어서 죽으나 톱을 통과하고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기어이 죽음을 결심했다.

반야심경에 불생불멸이라 했으니 안 죽을지 모른다는 믿음과, 혹 죽더라도 언젠가는 어차피 죽는 것이니 조금 일찍 죽는다고 크게 원통할 건 없다는 생각으로 불생불멸을 화두로 바꾸어 들고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뎠다.

불생불멸을 쉼없이 중얼거리며 비장하게 톱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톱날에 닿는 순간 아품을 채 느낄 사이도 없이 여지없이 살은 찢겨 사방으로 튀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난 톱날 안으로 걸어가 마침내 완전히 통과했다.

통과 후,, 나의 몸은 산산히 찢겨 흩어져서 자취조차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몸이 없음에도 나의 의식은 뚜럿하고 영롱했다. 환희였다!

톱날을 용맹하게 통과한 것이 기쁘고 살아 있음에 황홀했다.

아! 몸이 없어도 죽는 것이 아니로구나. 죽는다는 생각은 몸에 대한 사유의 착각일 뿐이고 몸이 없어도 나는 죽지 않는 신비의 보물인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몸의 형상이 없는데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은 죽지 않고 영롱한 불성이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이 소식을 지금 만천하에 전하니,, 이 얼마나 기쁜 희소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