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향 친구에게

봉숭아

빛속으로 2009. 8. 13. 13:06

 

 

 

 

 

                  봉숭아

 

 

아내가 가져온 봉숭아를 화분에 정성스럽게 심었다.

좋은 토질에서 자랐는지 튼실했다.

가져오는 동안 뜨거운 날씨에 시들어서 축 쳐진 것을 화분에 심고 물을 듬북 주었다. 봉숭아 심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이웃 분에게 꽃이 피면 손톱에 물을 들이라고 하니 그러야겠다고 소녀같은 함박 웃음을 피운다.

저녁을 먹고 어둑할 무렵 머뭇거리며 아내가 말했다.

"봉숭아를 집앞에 심으면 안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아니 왜?"

"옆 식당집에서 봉숭아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봉숭아를 집 앞에 심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적에 들었다고 하던데 봉숭아를 집에서 키우면 안되는 거예요?"

"난 처음 듣는 얘긴데 왜 집 앞에 심으면 안된다는 거래?"

"잘 모르겠는데 어릴 때 들은 얘기래요."

"글쎄,, "

"안 들었으면 모르겠는데 듣고 나니 왠지 찜찜 하네."
"그렇군. 안 들었으면 괜찮은데 듣고 나니 기분이 좀 그렇군. 그럼 뒤란에다 놓던지,,"

"그래야 할까 봐요."

우리 집 앞에 해마다 물봉숭아를 화원에서 사 놓았다.

물봉숭아는 봄부터 피기 시작하여 늦가을까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면서 계속 화사한 꽃을 피웠다. 연분홍 진분홍 보라색 등 여러 색깔이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늘 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서 예쁘다고 한마디씩 했다.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서 매년 심어서 감상케 했는데 그런데 올해는 화원이구 떠돌이 화초 장사꾼이구 간에 물봉숭아 파는 것을 보지 못하여 화원 주인에 물으니 올해는 물봉숭아가 흉작이라 하더라며 아내가 전해주었다.

그런 차에 아는 분의 밭에 봉숭아가 너무 많아서 뽑아 버린다 하므로 그럼 봉숭아를 심자고 해서 가져와 심은 것인데 집에 심으면 안된다고 하니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 조심하고 주의하는 것이다.

만약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해도 그 과보가 없다면 기분이 일어나는 대로 마음에 안들면 욕도 하고 때리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욕하고 비난하면 상대가 좋아하지 않고 똑같이 비난하고 욕을 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며, 기분 상하게 하는 놈이 있으면 몽둥이로 때리고 심하면 죽이기도 하고, 마음대로 남의 물건을 빼앗을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면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나쁜 액을 면하기 위함인데 집에 봉숭아를 심어서 나쁜 액이 온다면 당연히 뽑아 버리는 것이 백 번 천 번 당연하고 옳을 것이다.

아내에게 찜찜하면 뒤란에 갔다 놓으라고 말은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그럴 이유가 무엇인지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어느 책에서 봉숭아가 벌래를 쫓아내는 성분이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오르고 또 어릴 적 봉숭아를 손톱에 예쁘게 물을 들이기도 했는데 집에 봉숭를 키우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봉숭아를 집에서 키우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봉숭아가 과연 나쁜 액을 몰고 오는 것인지 사유했는데 그 말은 신빙성이 없고 잘못 전해진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수확한다. 그런데 봉숭아를 심었는데 액운이 따른다는 것은 왠지 논리가 서지 않는다.

액이 온다는 것은 나쁜 행을 한 인연 때문인데 나쁜 말이나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고 꽃을 심었는데 나쁜 액이 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풀꽃나무에선가 읽은 기억으로는 봉숭아가 벌래나 해충을 쫓게하는 성분이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봉숭아를 심으면 안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그리고 내 생각에는 말과 행동으로 나쁜 업을 지으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선행을 하면 복을 받는 법인데 그런데 봉숭아를 심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되니 어제 옆집에서 한 말은 신경쓰지 말자구,"

내 말에 아내도 동의했다.

어제는 시들하더니 물을 듬북 주고 하루밤 자고 나니 생기를 찾은 듯 싱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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