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향 친구에게

비 오는 날의 안개

빛속으로 2009. 8. 9. 13:45

 

 

 

 

                                    비 오는 날의 안개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장마전선이 전국을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비를 뿌리는데 오늘은 이곳까지 북상하여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두둑두둑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방이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포근하고 아늑하다.

작은 방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오랜 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도인은 묘지에서 하늘을 이불로 삼고 살았다는데 그것에 비하면 너무 호사로운 생활이라 감사보다 위대한 선사의 도행에 못 미치는 부끄러움도 인다.

천지에 가득 비가 뿌리는데 내 고요한 방에 평안의 안개를 깐다.

티브이에서 보면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위에 자욱한 안개가 퍼지는데 방송을 보면서 참 멋있다고 생각했던 안개구름을 내 방에 잔잔하게 깐다.

몽실몽실 피는 구름 안개를 깔고 사뿐사뿐 걷는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이 유리창문으로 보이지만 이런 날에 나를 만나러 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롯이 즐길 수 있는 평온함이다,

근심 걱정 슬픔 괴로움 증오 분노 두려움 욕심 같은 온갖 번뇌 망상을 다 내려놓고 그 위에 하얀 안개를 자욱하게 덮어서 세상은 고요하고 깨끗하다.

맑은 하늘에 흐르는 새털구름처럼 평온하니 참 좋다,

눈부신 빛이 되기도 하고 화사한 꽃이 되기도 하고 기쁨이 되어 자욱한 구름 위를 천천히 걷다가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한다.

외로움과 두려움 적막함에 동지를 찾아 낚시를 간다든가 사냥을 떠나는데 비록 힘이 없는 작은 생명일지라도 심심하다고 놀이처럼 목숨을 빼앗으면 안 된다.

목숨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며 살생을 즐김은 반드시 좋지 않는 과보가 따르므로 삼가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과응보를 알지 못하고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하고 싶은 욕망을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순간순간 맞이하는 소중한 시간에 그릇된 행위로 죄를 만드는 것보다야 구름을 융단처럼 깔고 고요히 앉아서 명상을 하거나 평화롭게 걷는 것이 더 보람있고 고귀하며 아름다울 것이다.

느낌과 생각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잡을 순 없어도 기쁜 일을 생각하면 기쁘고, 슬픈 일을 생각하면 슬프고, 괴로운 일을 생각하면 괴로운 것과 같이, 고요한 방에 오색 구름을 자욱하게 펴고 앉아있거나 사뿐사뿐 걸으면 지극한 평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화창한 봄날에도 신록이 우거진 여름의 숲속이나 낙엽이 지는 가을의 호숫가를 산책을 하면서도 때로 오색 구름을 융단처럼 펴고 걸어봐야겠다.

 

 

    글 / 각우 윤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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