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삼임

[스크랩] 성선설과 성악설과 본성

빛속으로 2012. 11. 7. 13:53

 

 

 

  성선설과 성악설과 본성

 

 

  성선설(性善說)이란 사람은 선한 본성을 타고 태어난다고 하는 맹자(孟子)의 인성론(人性論)이다. 중국 추나라 태생의 맹자(BC 371~ 289)는 공자의 학설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로 성(性)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선한 마음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 근거로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선한 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러나 다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의예지의 덕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힘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군자(지배자)와 소인(피지배자)을 구분하는 근거로 삼았으며 군자는 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반면 소인은 보존하지 못하고 상실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군신의 관계, 부자의 관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등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구조가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군자는 통치를 통하여 그가 가진 선한 성품을 소인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인정(仁政)론을 설파했다.

 

  반면 성악설(性惡說)은 사람의 성(性)은 원래 악한 것인데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구현된다는 중국 전국시대 순자(荀子)의 인성론(人性論)이다. 순자(BC 300~ 230)는 조나라 태생으로 단순하게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되는 성악설만 놓고 보면 유교와 대립각을 세운 사상가로 잘못 알려질 우려가 있으나 실은 공자와 맹자의 학설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분이다.

  그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누구나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며 좋은 목소리와 예쁜 용모를 탐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만일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악한 본성을 따르고 그 욕구에 좇아 간다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고 사회질서가 어지러워져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이 있어서 법으로 교화하고 예의로 인도한 뒤에야 비로소 예(禮)와 도리에 합당하게 되어 천하에 질서가 있게 된다고 했다.

  타고난 인성은 비록 악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하여 선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능력은 누구에게나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인성이 형성되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했으며 교육의 효과를 강조했으니 성인은 임금의 권세를 세워서 사람들에게 예의를 밝혀서 감화시키고 법도를 제정하여 다스리며 형벌을 엄중히 하여 악행을 금지시키므로써 온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선에 합치하도록 했다. 이것이 성왕의 정치이며 예(禮)의 구현이라고 주장했다.

 

  두 분이 주장하는 바를 각각 들어보면 모두 옳은 것 같다. 맹자의 논리를 들어보면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이 맞는 것 같고 또 순자의 논리를 들어보면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지만 교육으로 선해 질 수 있다고 한 성악설도 역시 맞는 것 같다. 맹자의 관점에서는 성선설이 맞고 순자의 관점에서는 성악설이 맞다.

  그럼 둘 다 맞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 잘못인가?

  성선설이나 성악설이나 근본적으로 악을 그릇되고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선을 옳고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까닭에 선을 계발하고 교육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분의 목적하는 바가 같고 다르지 않다. 본성이 착하다는 성선설과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는 두 분의 언어와 견해는 다르지만 방법론은 선을 추구하고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를 지향하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르며 같고 같지만 다르다.

  그러면 근본과 방법과 목적이 일치하는 참다운 본성은 무엇인가?

  성선설과 성악설이 둘 다 맞다는 생각을 버리고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이 둘 다 그릇되고 잘못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나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본성을 본다.

  우리는 곧잘 남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양식으로 삼지만 그림 속의 음식은 먹을 수 없고 진수성찬도 먹지 않으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의 본성을 직접 체득하고 깨달아야 무한한 공덕과 이익이 있다. 단지 남의 말을 이것 저것 주절거리는 것은 이익이 없으며 앵무새와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선악의 분별심이 일어나기 전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곧 본성임을 알고 가슴에 바르게 간직해야 한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마음이 순수한 본성이며 텅 빈 마음에서 하나의 생각이 일어나 분별하므로 좋거나 나쁘거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느낌을 따라서 선과 악이 발생하며 옳고 그름의 관념들이 일파만파로 재생산되어 온 법계에 퍼지는 것이다. 무명의 분별심이 생겨 욕심과 집착이 일어나면 이미 본성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선과 악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며 언어도 없는 깨끗한 마음이 우리의 순수한 본성으로 거기에는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불안과 두려움이 없고 늙음과 죽음도 없는 별천지다. 주관의 인(因)과 객관의 연(緣)이 만나서 형성되는 인식을 초월한 자신의 본성을 투철하게 자각해야 한다. 이것은 각자의 소명으로 배움과 학문이 지향해야할 최종 목표며 지혜의 궁극이다.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하여 맑고 밝은 스스로의 본성을 찾아서 그 안으로 몰록 들어가 태평을 구가해야 한다. 본성은 모든 형상과 일체 마음의 고향이다. 

 

 각우 윤철근

 

출처 : 도솔천 명상센타
글쓴이 : 빛속으로 원글보기
메모 :

'빛의 속삼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저승 길  (0) 2012.12.09
[스크랩] 욕망의 칼 지혜의 검  (0) 2012.11.16
[스크랩] 붓다  (0) 2012.11.03
[스크랩] 바람의 노래  (0) 2012.10.31
[스크랩] 분노엔 침묵하라  (0) 201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