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6일
4대 성인 중에 한분인 공자는 사람들이 인(仁)하지 못하므로 인(仁)을 말씀했고, 사람들이 의롭지 못하므로 의(義)를 말했고, 무례하므로 예(禮)를 가르쳤고, 무지하므로 학문을 부지런히 배우라 했으며, 불효자에게 효(孝)를, 간신에게 충신(忠臣)이 되라고 했다.
어느 날 공자는 노자를 찾아가서 인의예지(仁義禮知)와 충효(忠孝)에 대하여 오랜 시간 장황하게 설명했다.
멀리서 찾아온 공자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묵묵히 듣고 난 노자는 인은 불인을 세우기 때문이며, 의는 불의를 세우기 때문이며, 예는 무례를 세우기 때문이며, 지는 무지를 세우기 때문이고, 충은 불충을 세우기 때문이며, 효는 불효를 세우기 때문이다,
만약 불인(不仁), 불의(不義), 무례(無禮), 무지(無知), 불충(不忠), 불효(不孝)가 없다면 인의예지(仁義禮知)와 충효(忠孝)를 무엇으로 세우겠느냐 하고 공자에게 물었다.
인의예지와 충효도 없는 무위의 자연(無爲自然)! 이것이 노자의 도덕이다.
공자는 노자를 만난 이후로 그의 학문과 명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불인, 불의, 무례, 무지, 불충, 불효가 없다면 무엇으로 인의예지와 충효를 세우겠는가,
그와 같이 사랑은 미움이 있어야 사랑이 될 수 있으며, 마음에 미움이 없다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미움이 없으면 사랑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자비는 간난아이의 웃음처럼 순수하며 눈 덮힌 산야처럼 깨끗하여 사랑도 미움도 없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과 같이 물을 주었다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밥을 주었다고 계산을 요구하지 않는 순수함이다.
자비는 친절한 말이며 따뜻한 미소며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는 것이며 산들바람과 같고 시냇물 같고 햇빛 같고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와 같고 숲속에 벤치와 같다.
사랑과 자비에는 연민이 함께 공존하므로 미묘하지만 그림자 없는 나무와 같이 상이점이 있다.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누구나 이웃을 사랑하라 함은 쉽게 접근할 수 있겠으나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니,, 어떻게 철천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지 않는가!
나에게 욕을 하고 주먹질한 것이야 그럭저럭 참을만 하여 용서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내 부모를 죽이고 내 사랑하는 자식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면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철천지 원수인데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그리고 사랑까지 할 수가 있겠는가!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 는 깃발을 높이 들고 펄럭이지만 구약을 함께 하는 아랍인과 같은 형제임에도 갈라져서 원수가 되어서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며 수천 년을 싸우고 있으면서 이웃을 사랑하라 그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면서 가슴에 비수를 품고 세계 곳곳에서 종교 전쟁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누군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하면서 손톱만큼의 양보도 없고 죽이고 죽고 싸우니 해괴하다. 결국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의 이중성이며 모순이고 스스로의 배반이다.
그렇다면 철천지 원수는 결국 사랑할 수 없는 것이며 예수의 말에 아무도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걸까?
원수를 사랑하라 함은 입을 열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매우 고차원적인 주문이다. 그 고차원적이 주문에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 즉 해답이다.
겨울 들판에 허수아비가 서 있다, 그 허수아비를 누군가 칼로 베었다면 허수아비를 죽였다고 허수아비를 쓰러뜨린 자를 아무도 원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허수아비가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를 칼로 베었다고 하면 아무도 분노하거나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원수를 증오하지 않으려면 원수가 허수아비가 되어야 하고 원한을 품은 사람도 함께 허수아비가 되어야 한다.
상대적인 두 사람이 모두 허수아비가 되면 원수가 없으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조차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아주 평온하다.
사람이 허수아비가 되고 허수아비가 공(空)이 되는 불가사의한 도리가 바로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다.
나와 남과 부모와 자식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본성이 공하여 허수아비와 같다면 애초에 원한이나 원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허수아비고, 허수아비가 원수이며, 원수가 내 부모 형제 자녀이니, 허수아비에 대하여 분노가 일 수 없기에 진리를 깨달은 성인에게 원수란 없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입으로 앵무새처럼 말로 하지 말고 위대한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면 사랑도 증오도 없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본래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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